그해 봄은 슬프게 왔다. 일상이 평탄하면 좋으련만, 비틀리고 꼬이고 엉키고 하는 게 인생인가 보다. 퉁퉁 부은 발로 뒤뚱거리며 겨우 일을 마치고 온 날,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내 사인(sign)이 된 환자서류가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HIPAA(의료정보법) 위반에 걸려서 조사 중이며 결과에 따라 간호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고 했다. 절망이 문을 두드렸다.
몇주 후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에서 당장 일할 곳을 찾던 중 free site로 무심히 들어갔다. “부활절 주말에 집에 오는 딸을 위해 햄을 샀는데 채식만 먹는군요.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세요.” 진공 포장된 햄과 영수증이 찍힌 사진의 포스트였다. 그 집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매주 다니던 도서관 옆이었다. 사실 햄 때문이 아니라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조그만 실수를 한 아들에게 야단치고 화풀이를 한 후였다. 화나는 이유는 나에게 있음을 알고 있었고, 무방비 상태로 당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바람을 쐬니 기분도 바뀌었다. 연초록 들판에 노란 야생화, 어느덧 봄이 깊숙이 와있었다. 그 집 앞에서 머뭇머뭇 한참 숨을 고른 후에 벨을 눌렀다. 체격이 크고 예쁜 여인이 “컴 온 인(Come on in!)” 하며 손님 대하듯 거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햄을 건네주었다. 여기에서 여태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져버렸다.
햄을 손에 쥐고 어린아이처럼 앙~ 하고 울음보가 터졌다. 어머니로서 혼자 이겨낸 악착스러움은 다 어디로 가고, 북받치는 설움을 모르는 여자의 어깨에 내려놓았다. 그 품에 안겨서 주룩주룩 소낙비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따스함이 미국생활 5년의 아픔을 녹여냈다. 어렸을 때, 처마 밑에 걸인을 위한 개다리 밥상을 걸어놓고, 그 상에 밥을 차려주던 나의 할머니가 그 여자랑 오버랩 되었다.
며칠 후 영어 클래스 가는 날, 그녀는 도서관에 미리 와서 날 기다렸다. 여러 가지 안을 제시했고 그중 하나는 재판을 하는 것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했고 소송 후에 재판에서 이겼으며 같은 직장에 6개월 후에 복귀했다. 모두가 좋아했다. 시련의 뒷장은 극복이라는 기쁨이었다.
이 위기로 인해 진실한 친구를 얻었고 세상을 사는 담대함과 시련을 이겨냈다는 자긍심을 얻었다. 사람이 추락할 때 떨어지는 잠깐의 순간이 절망일 뿐 바닥에 닿았을 때는 반동처럼 오르는 길만 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암담한 절망이 탈바꿈을 할 시간만 견뎌내면 되는 것이었다. 내게 딱 맞는 맞춤 부활의 은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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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벨라 / 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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