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더는 보지 못할 사람처럼 눈을 사용하라.”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았던 헬렌 켈러의 말이다. 삼중고의 장애를 딛고 평생 장애인을 위해 헌신했던 그는, 다수의 저술을 남긴 훌륭한 문장가이기도 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글은, 내게 한동안 찾아들던 둔감한 감성을 환기시키는 변곡점이 되었다. 육필에서 느낄 수 있는 그의 진정한 면모와,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던 작품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은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고,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
헬렌 켈러는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보고 싶은 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갈망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암흑과 적막 속에서, 오로지 손가락이 주는 촉각과 사유와 상상으로 그리는 세상이 풍요롭고 서정적이다. 눈에 닿는 것마다 일일이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친밀한 시선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사소하지 않음을 보고 있다.
그의 창조적인 눈길은 내적 자아와 외부세계를 연결하고, 색채의 향연을 칭송하는가 하면,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을 응시한다. 타인의 기쁨에 행복하고 애처로움에 연민으로 다가가는, 헬렌 켈러만의 시각적 도구는 영혼의 창, 마음의 눈이다. 익숙한 나머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들에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를 찾아가는 그를 따라가다 보면, 창조주에 의해 놀랍고도 정교하게 조율된 삶의 축복을 보게 되고, 내게 온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선물임을 깨닫게 한다. 종국에는 무감각했던 마음을 흔들며, 볼 수 있음에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사흘, 누구에겐 그저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반복의 시간이기도 하고, 누구에겐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얻고 싶은 절실한 시간이지만, 누가 그 처지를 예측할 수 있을까. 헬렌 켈러의 오래된 꿈은 축복처럼 다가온 오늘을 각인 시키며, 삶의 가치와 숨겨진 아름다움을 통견하는 지혜의 눈으로 내게 와주었다.
켈러가 53세에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당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많은 미국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고,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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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 /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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