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답변이 다양하다. 사회를 담는 그릇이라거나, 혹자는 건축은 집 짓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행위로 정의하기도 한다.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은 건축가는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닌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 정의를 이론과 철학으로 확장하거나 개별 학습과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 누가 내게 할머니나 어린아이와 같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한 정의를 묻는다면, 나는 ‘집을 짓다’라고 답할 것이다.
내게 집에 대한 몇 기억이 있다. 시골 할머니 댁의 공간, 세발자전거의 뒷좌석 아래로 바라보던 땅의 움직임, 그곳은 개량 한옥이었다. 부산의 2층 양옥집의 벌집무늬 창문, 그 사이로 비치던 빛과 문양들, 그리고, 서울의 강남 개발이 미처 진행되기 전 방배동의 집에선 마루가 없어 방과 방을 뛰어다녔다. 개량 양옥의 변형이다. 이후,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꽤 많은 시간을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기억들은 단편적인 조각이 되어 머릿속에 박제되었다. LA에서 거주했던 타운하우스는 이전과는 다른 유형이었기에 각별하고 풍요롭게 기억한다.
하이데거는 거주를 통해 비로소 존재를 획득할 수 있다 하였다. 정주함으로써 주변과 관계 맺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의미이리라.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생활하다 30살이 너머 미국 LA로 유학을 왔다. 공부하고 실무하며 그 도시에서 10여 년을 살다 보스턴을 거쳐 지금은 뉴욕에서 6년째 살고 있다. 한 곳에 정착하고 사는 시대에서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사회로의 변화가 일상이 되었기에 특별하지 않다. 이주도 거주의 한 유형으로 인식하며 언제부터인가 집이란 곳이 정주에서 잠시 머물다가는 이주의 장소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 나의 뉴욕 집은 편한 곳일 뿐, 이야기가 없다.
다양한 유형일지라도 집은 여러 방식으로 기본적인 기능을 제공한다. 다만 단순히 물리적인 기능만으로 집의 의미를 규정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풍부한 체험이나 기억과 같은 감성을 만드는 데 있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 성소로서의 집은 자아를 형성시키며, 약한 영혼을 위로할 피난처로 서술하였다. 뉴욕 근교를 운전하던 어느 크리스마스 저녁때 뉴저지의 조그만 주택에서 차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 적이 있다. 화려한 집이 아니었으나, 앙증맞은 성탄 장식과 전원이 어우러져 나를 환대해 줄 것만 같은 따뜻한 장소였다. 나의 뉴욕 아파트의 한 창문은 옆 아파트의 무심한 벽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이 창문을 마주한 채 간이 식탁에서 아침에 커피와 베이글을 먹는다.
나의 미국 생활이 20년이 되었다. 10년 전쯤이었을까, 암과 투병 중이셨던 어머니께서 가끔 내게 되뇌던 말씀이 있었다. ‘나 죽으면 집에 오겠나?’ 그때마다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당연히 언제든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그 물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젊었고, 부모님이 사시는 부산의 아파트가 특별한 집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그때마다 내게 그 질문을 하셨을까? 행여 당신의 집에 비어있던 자리를 죽음의 공포 앞에서 메우고 싶으셨지 않았을까?
근자에 어머니가 내게 묻는다. 언제 군대 제대하고 집에 올 거니?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의 기억이 30년 전의 어느 시각에서 멈추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나는 쉽게 어머니 댁을 다녀올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언제든 쉽게 가겠노라고 답하지 못한다. 내게 집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는 장소가 사라져 버리기 전에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곧 그때가 올 때 어머니가 나를 기억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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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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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세대에 사는 사람들은 꼭 동물을닮은 세대인것같다는말을가끔하곤 하지요, 집이라하지만 한국어렷을때처럼 대대가 살아온 그런집이 아니고 여기저기 이사다니고 먹는것도 하루를사는데는 좋을지모르지만 내일엔 몸에해로와 수많은병에 시달리게되고 이웃도 어려ㅅ을때 같이놀든 이웃이 친구가아닌 직장동료 정도 만나는사람 결혼상대도 모두가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삭막한 들에 산에사는동물같은 생활 생활 그런데 그런 사람을 만물의영장이라들한다...내눈엔 돈에 권력에 남의누에잘보이기위한 게걸들린 만족을못하는 좀심하게 말하면 정신병자 몽유병환자들같은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