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 이탁 열사 외손자 김문조 옹, 평전 펴내

일제 무장항쟁의 주역 이탁 열사를 통해 나라사랑의 정신이 미주한인사회에 널리 퍼지길 기원하는 이 열사의 외손자 김문조(사진)옹이 저서 ‘동우 이탁 평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독립운동가 동우 이탁(李鐸) 열사의 외손자로 뉴욕에 거주 중인 김문조(87·사진)옹이 이 열사의 평전을 펴냈다.
13일 본보를 방문한 김 옹은 "개인적으로 한국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30여 년간 역사 연구에 몰입하던 중 외조부인 이탁 열사의 항일 운동을 후세에 제대로 전파하고자 평전을 펴내게 됐다"라며 "막대한 재산을 고스란히 항일 운동에 바칠 만큼 민족 단합과 계몽 사업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이탁 열사의 삶을 우리가 고스란히 본받아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저술 배경을 밝혔다.
김 옹에 따르면 이탁 열사는 친동생 서우 이석 열사와 함께 임시정부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선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 백범 김구 선생 등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에서 일 했던 이탁 열사는 대한광복군 창설의 주역으로 광복군 참모총장 겸 사령부장 대리로 시무했다. 대한광복군은 국내외를 통해 일제기관 파괴, 국내 후방교란 등의 군사 활동을 전개했는데 1920년 통계에 의하면 주재소와 행정기관 파괴, 피아간 교전이 총 78차례 이뤄졌고 주재소 습격이 56개소, 면사무소, 영림서 방화가 20차례, 일본경찰 사살이 95명이었다.
이처럼 이탁 열사는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특히 미국 의원단이 내한했던 1920년6월부터 8월까지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미국 의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 평양, 신의주, 신천 특파 결사대를 조직, 무장투쟁을 진두지휘 했다. 당시 대한광복군의 무력시위로 세계여론은 대한민국의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김 옹은 이어 “이탁 열사는 1930년 ‘상해 동포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를 만큼 동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국립묘지에 이탁, 이석의 묘가 마련돼 있지만 이탁 열사의 유해는 상해에, 이석 열사의 유해는 아직 북한에 있다. 두 분의 유해가 온전히 대한민국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평전은 이탁 연대기, 연보 요약, 저자가 수집한 정부 기록 및 일제기관과 첩보원이 수집했던 자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968년 도미, 공정기술자로 유엔에서도 일한 바 있는 김 옹은 여러 단체와 도서관 등지에서 한인 2세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문의 646-750-7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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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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