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째 현업에서 건축을 하며 우리나라는 건축과 건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한탄을 많이 들었다.
일반인은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건축과 건설은 지식산업과 노동기반 사업의 차이만큼 다른 분야다.
건축은 전형적인 지식산업으로 ‘1+1=2’가 아니라 건축사에 따라 ‘1+1=100’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건설은 정직하게 ‘1+1=2’인 분야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식민지 시대부터 산업화를 거치면서 건축이 건설에 종속됐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실제 일본과도 다르다.
일본은 서구와 거의 동시에 산업화를 이루면서 건축과 건설이 구분돼 발전해왔다. 오늘날 안도 다다오나 쿠마 켄고 등 세계적인 스타 건축사들이 탄생한 배경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에게는 건축사 자격을 거의 주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한국인 건축사는 몇 명 되지 않았다. 지식산업에 한국인의 자리를 만들 수 없는 것은 지배자가 만든 논리 때문이었다.
문제는 해방 이후다.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계획과 절차를 따져가며 건물을 짓기 힘들었다.
시간은 부족하고 당장의 필요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다. 그 중심에 건설이 있었다. 더구나 들어가는 건설 비용이 건축설계비의 몇 배가 됐기 때문에 민관 모두 건축사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일종의 부수적인 업무로 봤다. 수많은 선배 건축사가 노력했지만 시장 규모의 차이 탓에 대중을 설득하기 힘들었다.
건축사는 아무것도 없는 대지에 합리적 상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건축계획을 만들어낸다. 건설은 그 계획을 실현하는 후속 업무다. 건설은 연관 업무로 자신의 시각으로 건축계획을 이해하고 건축사에게 동의를 구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
건설에서 별도의 창의적인 발상을 요구하는 경우는 건축사의 설계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할 때다. 설계를 훼손하거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건축사의 디자인을 실현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좋은 건설사는 건축사를 무척 괴롭힌다. 수도 없이 많은 확인과 토의를 하며 끊임없이 건축사의 건축을 실현할 방법을 고민한다. 세계적인 건축물은 그 도시, 그 나라의 문화재가 된다. 당연히 이런 문화재는 누가 디자인하고, 어떻게 설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건축사의 업무인 창의적 설계와 노력은 자체 수익성과 사업 규모에 비해 산업 전반에 파생되는 영향력이 크다.
이 때문에 많은 선진 산업국가에서는 건축 자체의 산업 규모보다 파생산업에 대한 영향력에 주목한다. 이들 국가에서 건축사를 지원하고 스타 건축사들이 탄생하는 원인이다.
건축설계는 지식산업의 핵심이다. 건축은 개인의 경험과 지식이 상호 간에 연결돼 집단지성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창의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건축과 건설은 다르고, 건축 고유의 특성으로 인정받아야 하며 건축전문가인 건축사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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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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