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의 시간을 ‘정확하게’ 제시한 17세기 성직자가 있다.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영국 국교회 아일랜드 대주교 출신으로 당대의 학자였던 그는 1650년(당시 69세) ‘하나님께서 기원전 4004년 10월23일 이른 새벽에 천지를 만드셨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세상의 시작으로부터’라는 부제가 붙은 ‘구약성서 연대기(사진)’라는 책자를 통해서다. 구약에 나오는 바빌론 유수와 유대왕국 성립, 솔로몬의 통치, 출애굽, 아브라함, 노아, 셋, 아담 등에 대한 기록을 샅샅이 모아 이런 덧셈식을 만들었다.
‘587+387+37+479+430+75+353+1656=4004.’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상식 밖의 얘기로 들릴 수 있겠으나 당시에는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유사 연구도 잇따랐다. 존 라이트풋 케임브리지대 부학장은 지구가 BC 4004년 9월17일 창조됐다고 주장했다. 지구와 인간 세상이 언제 어떻게 출발했는지에 대한 관심은 이전에도 없지 않았다. 르네상스기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저술가 줄리오 스칼리제르는 BC 3949년, 30년 전쟁 도중 굶어 죽은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BC 3992년, 아이작 뉴턴은 BC 4000년께를 천지창조의 시점으로 여겼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99년 탈고한 목가적 낭만극 ‘당신 뜻대로’에도 ‘세상이 생긴 지 6000년이 다 되어간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2세기께 유대교 랍비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는 기록도 있다. 어셔의 추정은 두 가지 이유에서 특히 주목받았다. 첫째, 연월일과 시간까지 제시해 정밀하다는 인상을 줬다. 둘째, 교단은 1714년부터 그의 추론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지질학 발달과 진화론 발표 등으로 도전받던 ‘성서적 창조의 시간에 대한 확신’은 19세기 말부터 크게 흔들렸다.
절대온도 단위(K)에 이름을 남긴 19세기 말 영국 과학자 윌리엄 톰슨(캘빈 남작)은 뜨거운 액체로 시작한 지구가 냉각되기까지 약 9,800만년이 걸렸다고 봤다. 방사성 연대측정법이 등장한 1907년부터 지구 나이는 45억년이라는 게 정설로 자리 잡았다. 인간이 지구의 기원에 대해 과학적으로 알기 시작한 지 불과 100년, 지식과 정보의 전파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건만 변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 2017년 신설 부처의 장관으로 입각하려다 포기한 모 교수는 국회 청문회에서 ‘신앙적으로 지구 나이를 6000년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종교와 맹신의 비이성적 결합은 힘세고 폭력적인 바보만큼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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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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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맹신자들이 지구촌에 특히 한국 미쿡에 들 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