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작품 ‘불신시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 어디 사는 대로 살아봅시다. 그리고 나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형님 돈만큼은 돌려 드리려고, 원금만이라도요.” 어머니의 얼굴이 좀 밝아진다. 진영은 잠자코 양말을 신고 있었다. 세 사람은 거리로 나왔다. 아침이라 가로수가 서늘했다.
1957년 작품인 ‘불신시대’는 주인공 진영이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전후 각종 부조리에 맞닥뜨리다 “그렇지,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라는 독백을 시작으로 세상 문제에 항거하는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다. 전후 소설의 ‘새로운 한 축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0년대 전후 한반도는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채업자는 희망 없는 이들을 더욱 어둠으로 몰아넣는 주범이었다.
1958년 농가 고리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농가 부채 규모는 885억환이었다. 전체 농업생산액의 약 6분의 1에 해당했다. 농가 한 가구당 평균 고리채는 4만환이었다.
간난의 시대 혜성처럼 등장한 게 신협이었다. 1960년 신협은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가난에 찌든 집안을 살리기 위해 탄생했다.
신협에서 빌려주는 대출금의 금리는 연 1.5~3%로 고리채로 허덕이던 60% 이상의 서민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담보도 따로 없었다. 담보는 대출자의 ‘정직성과 좋은 인격’이었다.
신협의 대출금은 대부분 고리채를 정리하거나, 집을 짓거나 수리하는 일, 자녀들의 학자금, 전세금 마련 등에 쓰였다.
그렇게 신협은 고리채 정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0년대까지도 신협은 고리채 타파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올해 74주년 8·15 광복절을 일주일 앞두고 신협은 ‘8·15 해방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상품 출시 사흘 만에 225건에 19억1,900만원의 혜택이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첫날에만 대출 상담 건수가 1,000건을 돌파했다. SNS 이벤트엔 나흘 만에 3,000건의 댓글이 달렸다.
‘순수 토종자본으로 서민을 돕는 신협 최고’라는 칭찬이 봇물을 이뤘다.
8·15 해방대출은 서민·직장인·자영업자 등에게 신용 심사를 거쳐 최저 연 3.1%에서 최대 8.15% 대출금리를 적용해 1,000만원까지 빌려주는 서비스다.
1호 수혜자 청주 사는 A씨는 “그동안 일본계 대부업체의 20%대 고금리를 갚느라 죽을 지경이었는데 신협이 나를 살렸다”며 “올해 광복절은 우리 가족의 ‘빚 광복절’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8·15 해방대출 상품은 59년 전 신협 본디 정신을 살려 살인적인 고금리를 앞세운 거대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우리 서민을 지키려는 ‘어게인 1960 운동’의 첨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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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신협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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