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만필] 胸中成竹 (흉중성죽) [의창만필] 胸中成竹 (흉중성죽)](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9/07/01/201907010105435d1.jpg)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
날씨가 서서히 무더워지고 장마 소식이 들려온다. 이때 사람은 하는 일마다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날씨 핑계를 댄다. 이어서 휴가라도 다녀와야 살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이제 휴가는 시간과 돈을 들이는 낭비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필수적인 활동으로 간주하게 됐다.
평생 바쁘게 살다 보면 눈앞에 닥친 일에 집중하느라 가까운 미래도 먼 앞날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훌쩍 지나 있게 된다. 분명 하루씩 흘러 한 달이 되고 또 일 년이 됐지만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하루씩이 아니라 10년을 한꺼번에 산 느낌을 받는 것이다. 휴가의 장점은 현재 하는 일의 흐름을 잠깐 끊는 데 있다.
이때 우리는 쭉 이어지는 흐름의 맥락을 돌아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리하는 여유를 가질 수가 있다. 이 여유는 휴가에서 일터로 돌아왔을 때 무엇을 하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닥친 일을 해내는 나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다. 반면 우리가 하는 일의 흐름에 매몰돼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는 그 방향을 전혀 알 수가 없다.
휴가에서 체험하는 여유는 송나라 소식이 대나무를 잘 그린 문동에게 배웠다는 흉중성죽(胸中成竹)의 고사에서 잘 나타난다. 대나무를 그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먹을 갈고 손에 붓을 잡아야 한다. 손에 붓을 잡기만 하면 대나무 그림을 휙휙 그릴 수가 있을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글을 쓰려고 해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몇 자를 적고 나면 그다음에 할 말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손에 붓을 쥐고 종이 위에 그릴 준비를 다 해도 그 붓을 종이에 긋기가 쉽지 않다. 한 획을 긋더라도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작업을 이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동의 깨달음을 전하는 소식의 말에 의하면 “대나무를 그리려면 반드시 먼저 마음(가슴)에 그리려는 대나무의 온전한 형상을 갖춰야 한다(묵죽필선득성죽어흉중·墨竹必先得成竹於胸中)”, 이를 줄여 흉중성죽(胸中成竹) 또는 흉유성죽(胸有成竹)이라고 한다. 이렇게 마음속에 그리려는 대나무의 형상이 온전히 드러나면 사람은 붓을 잡고서 그리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예술 창작의 사정이 여기에 이르게 되면 손을 재빨리 놀리고 붓을 힘차게 휘둘러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형상을 종이에 구현하게 된다. 소식은 이러한 창작 과장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다음처럼 표현했다. “마치 토끼가 잽싸게 달아나고 송골매가 쏜살같이 들이치듯 하는데 조금만 늑장을 부리면 그리고자 하는 형상화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여토기골락·如兎起골落, 소종즉서의·所縱則逝矣).”
평소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바로 여기에 몰두하느라 인생만이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 큰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휴가를 가게 되면 사람은 일과 자신을 엮어주는 끈을 끊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일시적 단절 상태에서는 조각난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엮을지 큰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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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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