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경 샌프란시스코
내 고향 대구에는 ‘김광석 길’이 있다. 수성교와 대봉교 사이의 방천시장은 오래 전부터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어릴 적 ‘토버모리 섬’이라 하여 시장통 동네의 작은 문화축제가 열릴 때면 예술가, 동네사람, 시장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소박하게나마 예술을 즐겼다. 마임도 배워보고 서툴게 조각칼도 잡아보고 붓도 들어보며 예술이 우리 일상과 가깝다고 느끼며 그렇게 낭만을 알고 자랐다.
그것이 ‘김광석 길’의 시초가 아니었나 싶다. 2010년 김광석을 사랑했던 작가들이 그곳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길이 만들어졌다. 당시 작가들이 제안하고 구청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바람직한 프로젝트라는 호평을 받았었다. 이후 입소문으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죽어가던 전통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신랑에게 소개하고 싶어 그 길을 찾았다. 김광석 길 초입의 동상을 조각한 손영복 작가가 친구라는 것도 은근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김광석 동상을 쿠킹호일로 감싸는 어이없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손으로 말이다. 이유인즉슨, 관할구청의 ‘김광석 길 다시 그리기’ 개선사업과 입찰 공고에 반대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입장을 표명한 것이란다.
김광석 길은 이미 가난한 예술가와 영세 시장상인들이 거의 내쫓기고 거대 체인점 등이 들어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변했다. 관할구청은 이를 규제해도 모자랄 판에 기존 벽화를 대폭 수정하고 김광석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 제작 등을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예술가들이 모두 배제되고 자본을 불러들이는 입찰 형식을 취한 것이다. 작가의 창의성이 무시된 채 관할구청에서 요구하는 대로 제작하는 작품들이 과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김광석을 기리는 의미와도 동떨어지며 그 길의 정체성도 잃은 것 같다. 비단 ‘김광석 길’뿐만이 아니다. 광주의 펭귄마을 또한 비슷한 곤경에 처해 있었다. 4년 전 달동네나 다름없던 이곳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텃밭을 일구고 폐품담장, 정크아트 전시장 등을 만들어 꾸민 마을에 작년에만 20만명이 다녀갔다.
그러자 관청이 도시재생사업을 내세워 땅과 집을 수용해 원래 주민들을 타지로 내몰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더 조장하는 이런 관트리피케이션이 아름다운 우리 골목문화를 해치고 있어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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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경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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