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에 있는 제롬은 서부에서 가장 사악한 도시라는 오명을 갖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다.
인디언들이 거주하던 그곳에 1876년부터 탄광이 시작되고 1950년 폐광이 될 때까지 1만5,000명의 사람들이 흥청거렸으나 지금은 약 200명 이하로 줄어 고스트타운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 계곡으로 이어진 아슬아슬한 길을 몇 십개 돌고 돌아 콧잔등이 새큰새큰한 아찔한 산마루에 걸려 있는 제롬! 한때 노다지 금광으로 수많은 이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 붉은 벽돌에 붉은 기와를 얹은 호화롭던 호텔은 텅 비어 아무도 없고 흥청거리던 선술집들은 지나간 영화를 잡으려는 듯 거미줄을 군데군데 쳐놓고 있다.
이곳에 들어올 때는 누구나 커다란 야망을 갖고 왔겠지. 얼마나 되는 사람이 그것을 이루었을까. 어떤 이는 노다지를 캐어 돈을 안고 나갔겠지만 어떤 이는 술과 노름으로 폐인이 되었겠지. 돈을 얻고 사랑을 잃은 사람도, 사랑을 얻고 돈을 잃은 사람도 있으리라. 세월은 가고, 산은 늙은 어머니 빈 젖같이 속살은 다 내주고 등걸로만 남아 여행객에게 아픔을 준다.
워낙 깊은 산 높은 봉우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듯한 집들 90%는 빈집이고 밤이면 유령이 나올 듯 한 이곳에 길손을 위해 남아있는 몇 개 안 되는 초라한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은 먼지에 쌓인 채 무표정으로 지나는 길손을 바라보고 있다. 한때 히피족들이 모여들었으나 그나마 모두 떠나고 지금은 마술하는 히피들이 조금 명맥만 유지한다고 한다.
미리 계획을 하고 떠난 여행은 기대도 많고 준비도 하지만 별안간 발길 닿는 곳으로 떠난 여행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기 위함이리라. 애초의 목적지가 제롬이 아니었고 세도나를 향해 가면서 큰 길을 버리고 산길을 택한 여정 중 우연히 만난 제롬이 내게 전해준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풍운아들도, 역사를 바꿨다는 클레오파트라도, 산천초목 세상사 모든 것들, 한 번 생겨난 것들은 머물다 스러져 빈 허공만 남는다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이치를.
실은 그 허공도 없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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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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