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최순실 게이트로 한국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한국민들은 영화가 현실인지 현실이 영화인지 모를 아니 영화보다 더한 현실에 놀라고, 분노하다 다시 허탈해진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충격적인 소식으로 분노와 허탈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되짚어보면 충격적인 부패 스캔들이 적지 않았고, 국가권력이 국민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 야만적인 사건들도 있었지만 이번 최순실 게이트가 더 충격적인 것은 한국 국민들이 그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과 국가시스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믿음 자체가 붕괴되어 버린 현재와 같은 상황은 왕조 시대를 제외하면 전례를 찾기 힘들다.
국민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교와 사적 친분에 휘둘려 외부의 사인에게 조종당하는 ‘로봇 대통령’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었던가.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지난 6일자 만평에서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에 들어앉아 운전대와 변속기 레버를 손에 쥔 채 대통령을 조종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대통령을 앞세워 사유화한 국가권력으로 국가와 정부를 집안 축재를 위한 수익 모델로 삼았던 그녀다. 하지만, 나는 최순실 그녀가 고맙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이 ‘우주의 기운’을 과연 누가 불러 모을 수 있었겠나. 권력층 부패에 무감각해져버린 국민들에게 새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란 사실을 일깨워 준 것도 최순실의 힘이 크다.
세월호 참사와 경제실정, 위태롭기 짝이 없는 대북정책으로 일관한 대통령의 무능과 무지, 무책임 앞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콘크리트 지지층이 와해된 것도 그녀로 인한 것이다. 대통령에게 역대 최저라는 5% 지지율을 가져다주지 않았는가. 악다구니를 써대며 딸에게 말을 태워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고야 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누가 무기력에 빠져 있던 국민 수십만명을 광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었겠는가. 음습한 곳에서 사적으로 부당하게 작동했던 최고권력의 추한 민낯을 드러내 보여준 이도 최순실 아니었던가.
최순실 게이트가 가져다 준 시대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설을 통해 한국 사회는 지금 1987년 이후 30년 만에 만에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고 있다. 하지만, 정권 못지않게 무능하고 무력한 여야 정치인들로 인해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한국은 더 힘든 국가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또, 이번 기회에 헌법 조문상이 아닌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는 보다 강력해진 제2의 최순실과 맞닥뜨리게 될 지도 모른다. 보다 정교한 전략과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할 새로운 최순실은 태블릿 PC를 흘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결코 하지 않을 것이며 어설프고 막돼먹은 모습으로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바보 같은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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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정책사회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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