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자본주의의 작동원리는 간단하다. “기업은 주주의 소유물로 그 가치는 주식시장에서 결정된다. 활발한 인수합병으로 극대화한 기업 가치를 통해 사회적 이익을 키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장하준 교수가 지적한 허점들은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장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주주는 기업의 법적인 주인일 뿐 광범위하게는 경영진, 직원, 채권자, 관계회사, 커뮤니티, 고객 등 여러 이해당사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주식시장은 속성상 단기 성과주의에 집착하기 쉬운 함정이 있다.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수많은 인수합병들이 효율성보다는 자금 동원력에 의해 결정됐다. 주식시장이 교과서적으로 작동해도 주주 이익과 커뮤니티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관점에서 훗날 ‘웰스파고 유령계좌’ 사태는 총수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거쳐 고객자본주의로 이행을 가속화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과 이사회는 물론, 주주마저도 우선순위 1번에 본인들이 아닌 고객을 먼저 두도록 요구받게 됐으니 말이다.
당장 감독당국은 은행 이사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경영진을 감독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소비자 불만이 많고 무단으로 계좌를 오픈하는 은행 등에 대한 제재 움직임도 보인다. 선불카드도 크레딧 카드 수준으로 고객 보호를 강화하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금융회사나 고객 돈에 손을 댄 은행원들은 일벌백계하고 있다.
무엇보다 백미는 연방 상원의 ‘의무 중재 조항’ 철폐 움직임이다. 은행과 거래를 시작할 때 ‘분쟁이 생겨도 소송하지 않고 중재를 신청하겠다’고 서명토록 한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불공정 약관이 개선되면 은행을 상대로 개인소송, 집단소송의 길이 열린다.
모두가 웰스파고 유령계좌 사태 이후에 나온 조치들로 200만개 이상의 계좌를 무단으로 열어 부당이득을 취한데 대한 엄중한 경고다. 은행에 투자한 수많은 주주들의 시각에서 보면 가혹한 처사요, 부당한 대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혜안을 갖고 있다면 일련의 조치들이 가리키는 방향성이 보일 것이다. 기업의 목적함수를 최대로 행복한, 또는 불만이 최소인 고객 확보로 재설정하라는 것이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표본인 GE의 현재 주가는 최근 10년래 최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한 반면, 생활용품 전문기업 존슨앤존슨은 최저점 대비 87% 이상 상승했다.
차이는 존슨앤존슨 본사 1층의 석판에 새겨진 ‘우리의 신조’(our credo)에서 찾을 수 있다. 존슨앤존슨이 신조로 삼는 우선순위 첫째는 고객, 둘째가 직원, 셋째는 커뮤니티이고 맨 마지막이 주주다. 앞선 세 가지에게 먼저 잘 하면 두고두고 주주들이 이익을 본다는 뜻으로 경영 전문가들을 해석하고 있다.
<
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