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우리 집 뒤편에 나지막한 산이 있었고 여름이면 그곳에 올라가 ‘산위에서 부는 바람’으로 더위를 시키곤 했다. 저녁때가 되면 지게 위에 나뭇가지 등을 가득하게 진 나무꾼들이 지나갔다. 중학교 때까지도 학교에서 돌아 올 때면 친구들과 항상 이 동요를 불렀고 지금도 어쩌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콧노래로 부를 때가 많다. 가사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바로 ‘내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온 친구로부터 요즘 서울의 어린이들이 동요를 부르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순간 깜짝 놀랐다. 아니 애들이 동요를 부르지 않다니.... 그럼 무슨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학교에서는 동요도 가르치지 않는단 말인가?그 친구의 답변은 이렇다. 물론 음악시간에 동요를 가르친다. 우리가 동요라고 하는 ‘산위에서 부는 바람’과 같은 옛 노래(?)가 아니라 현재의 실정에 맞게 만든 창작 동요를 가르치지만 애들은 그 보다는 K-팝에 훨씬 더 매료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긴 도시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시원하게 불어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주는 산바람을 알 턱이 없다. 시원한 바람은 에어컨 앞에 가면 나온다. 그것도 덜덜 떨릴 정도로 춥게 나온다. 겨울이면 응접실에 설치된 벽난로에서 나무를 지펴 따뜻하게 지내지만 그 나무는 마켓에서 사 오는 것이지 누가 어떻게 만들어(?)오는 지 알 턱이 없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동요를 부를 수 있겠는가.
중고등학교 때 우리는 비빠빠룰라(Be-Bop- A- Lula)라는 팝송을 엄청 불러댔었다. 진 빈센트가 부른 이 노래는 엘리스 프레슬리를 비롯해서 비틀스, 존 레논 등 수십명의 세계적인 유명 가수들이 따라 부를 정도로 당대를 휩쓴 곡이었다. 이 노래가 당연히 우리나라에 들어 왔고 그 뜻도 모르면서 우리는 불렀었다. 그 때 우리들의 어른들은 무척 못마땅해 했고 크게 혼을 내기도 했었다. 그건 노래가 아니다. 부르려면 ‘목포의 눈물’이나 ‘황성 옛터’같은 우리 노래를 부르라고 점잖게 충고하기도 했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 때 팝송을 불렀던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의 어린이들이 동요보다는 K-팝에 매료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세상이 변한 것이고 우리가 그 변한 것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은 동요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만의 고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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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철삼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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