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방학이 시작된 날부터 아이는 게임할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정해진 원칙이 있긴 하다. 게임을 하기위해서는 피아노, 숙제, 독서 등을 먼저 끝내야 한다. 아이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할 일들을 해치우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곤 게임 시간 동안 의자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이 넘어버린다. “그만해, 시간 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것만 끝내고…”의 실랑이가 반복된다. ‘아, 이건 아닌데’ 싶어진다.
미국 소아과 학회는 학령기 아이들이 컴퓨터나 TV 앞에서 보내는 스크린 타임이 하루 2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시간은 교육용 프로그램을 본 것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아무리 2시간으로 시간을 제한한다고 해도,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고 나면 아이는 그다음에 뭘 할 지를 몰라 물어오는 게 문제다. 스크린 타임이 길어질수록 나타나는 영향 중 하나는 아이들의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조사도 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화면 앞에서 손가락만 움직이다가 자기 스스로 뭔가 즐거움을 개발하려면 그야말로 너무 힘이 드는 것일까?어른들 말씀처럼, 우리 어릴 적엔 이런 거 없었다. 학교 갔다 오면 밖에 뛰어나가 술래잡기 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고, 종이에 인형을 그려서 오리고 색칠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뭘 하고 놀까 궁리하고 심심해하고…중고교 시절에도 학교 공부할 때 외에는 참 심심한 시간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라디오도 듣고, 직접 만화도 그리고, 소설도 써보고… 뭘 할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내 아이는, 아니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물론 할 게 많아서 스케줄이 빡빡하기도 하지만 컴퓨터는 기본이고, 스마트 TV에, 태블릿, 엄마 스마트폰, 게임기 등등 … 돌아서면 현란하게 움직이는 화면들이 시선을 붙들어 가만히 앉아 궁리할 시간이, 심심할 시간이 없다.
심심해야만 주변에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게 되는 데 그런 기회를 아예 빼앗겨버리고 있는 걸까.
그래서 아이를 의도적으로 방에 들어가 있게 해봤다. 효과는 천천히 나타났다. 어떤 날은 ‘심심하다’고 ‘할 거 없다’고 징징대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픽션을 쓴다고 첫 장을 써서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림을 잔뜩 그려서 뭔가를 만든다고 꼼지락대고, 어떤 날은 밖에 나가 자전거를 타자고 조르기도 했다.
밖에 나가 나무가 어느새 푸르러졌는지, 캘리포니아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감탄하며 주변 환경을 보는 귀한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오래전 어떤 세미나에서 ‘고독에서 힘이 생긴다(Strength comes from solitude)’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다. 혼자 있는 시간에 우리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머리를 쓰고, 상상력을 키우고,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차분해지지 않나?그 심심한 유년기의 시간들 덕에 나는 옛날부터 글을 쓰고 싶어했고, 글 쓰는 일과 연관된 일을 하게 된 것도 같다.
개학하면서 아이는 학교 숙제들을 해내기도 바쁜 상황이라 당장은 별로 심심할 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다려라. 너의 창의력을 위해, 아주 심심하게 만들어 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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