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옆자리에 앉아 머리를 깎던 80대 한인노인이 큰 목소리로 한국정치를 논하기 시작했다. 야당 욕으로 시작하더니 이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원칙대로 정치를 잘 하고 있다며, 특히 전날 경제 3개년 계획과 관련한 긴 연설을 외워서 하는 것을 보면 뛰어난 머리만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주위의 동의를 구한다. 대통령이 프롬터에 뜨는 원고를 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박 대통령은 노인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많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원고도 없이 긴 연설을 할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는 노인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칭찬 전화가 신문사로 걸려온 적도 여러 번이다. TV 시청자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투명 프롬터가 대통령을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 연설의 달인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연설에 능숙한 인물로 비춰지는 것은 정치인에게 강점이 된다. 그런 면에서 거의 모든 연설을 프롬터에 의지할 수 있는 대통령은 이미지 메이킹 면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언론들이 난리를 쳤던 박 대통령의 미 연방의회 영어 연설도 프롬터에 의지했던 것임은 말 할 나위 없다.
그러나 프롬터 사용 여부는 형식일 뿐이다. 프롬터 연설을 했다고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도, 원고 없이 하는 연설이라고 진정성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어떤 언어로 이것을 구성하는가이다.
언어는 흔히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들 한다. 말과 단어에는 그 사람의 의식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특히 정치는 언어의 산물이다. 그래서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언어는 항상 치밀한 분석과 해석의 대상이 된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단어 하나하나에서 의중을 읽으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주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쓴 말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표현하고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을 자꾸 죽여 가는 암덩어리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쳐부술 원수’니 ‘암덩어리’니 하는 대통령의 표현에 온라인상에서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다.
“너무 북한스럽다”는 비판도 있고 “등골이 오싹하다” “반공시간을 연상시키는 대단히 저급한 언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의 건조하지만 정제됐던 문장들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런 변화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눈에 띈다.
박 대통령은 달변가가 아니다. 또 사용하는 어휘들도 대부분 건조하다. 하지만 그동안은 상당히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 왔다. 그랬던 것이 최근 들어 강경한 언어로 점차 바뀌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자신의 구상을 조속히 실현하고픈 대통령의 절박감과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며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언어치고는 품격이 부족하고 너무 거칠다. 군사주의 냄새까지 풍긴다. 이런 언어들이 걸러지지 않는 시스템이라면 대통령이 점점 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가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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