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화두가 있다. 이 화두는 잊을만하면 한 달에 한 번 꼴로 어김없이 빚쟁이처럼 나타나 한동안 내 머릿속을 온통 지배했다가는 물러난다. 그간 나와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친숙해진 이 화두는 바로 ‘완성도’이다. ‘주말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단골이 된 화두이다. 이제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올해 마지막 원고의 완성도와 씨름하고 있다.
문학 용어로서의 ‘완성도’란 “문학 작품에 완벽이란 없다”는 전제 밑에 뿌리내린 개념이 아닌가 한다. “완성도가 높다”면 좋은 작품이라는 뜻이며 “완성도가 낮다”면 시답잖은 작품이라는 의미이다. 타고난 글재주나 글을 단숨에 쉽게 쓰는 능력이 없는 나는 시답잖은 글을 벗어나려고 내 수준의 완벽을 지향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간 완성도를 끌어올린다는 일념으로 ‘주말 에세이’에 적잖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소재 선택, 주제, 구성, 문장 등 어느 하나도 만만히 다룰 수가 없었다. 여기에 감동과 재미, 지적 흥미나 인생의 의미 따위를 염두에 두고 글을 엮다보면 번번이 한계에 부딪혀 내 경험과 능력의 일천함을 절감하고는 한다. 아마 2백자 원고지 칸을 메우던 시절이라면 매번 엄청난 원고지가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것이다.
소재가 참신하다 싶어 몇 주 공들여 어렵사리 완성한 글에서 진부한 냄새가 풍겨 내버린 경우도 있고 몇 시간 원고와 씨름하다 마음에 꼭 드는 단어 하나를 겨우 건져내고 무릎을 친 적도 있다. 주제에 대해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 관련 서적도 사서 읽었다. “잘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쓰며 셸리 케이건의 ‘죽음(Death)’을 읽었고 용서에 관한 글을 쓰며 딕 티비츠 박사의 ‘나를 살리는 용서(Forgive To Live)’를 밤새워 탐독하기도 했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고 자부하더라도 독자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완성도가 낮아 관심을 끌지 못하는 글도 있었을 것이다. 투자한 시간과 열정만큼 완성도가 높아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최선을 다해 완성도와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벌이다 보면 스스로의 한계를 조금씩 뛰어넘어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는 역량은 키워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내 입에 붙어버린 완성도는 이제 우리 집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요즘 아내는 나 못지않게 일상 대화에서 ‘완성도’를 자주 입에 올린다. 아내는 완성도를 문학의 범주를 넘어 인생살이 전반에 걸쳐 폭넓게 적용하라고 주문한다. 아내는 불만을 ‘완성도’를 빌려 써서 표출한다. 나쁘다는 말보다는 귀에 별로 거슬리지 않고 감정을 상하게도 하지 않는 불만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든다.
“긴 머리는 좋은 이미지의 완성도를 저하시킨다”는 메시지로 이발을 하게 만든다던가, “계단 카펫 청소의 완성도가 낮다”고 내가 맡은 집안 청소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때로 오해의 소지가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서는 “대화의 완성도를 좀 더 높이자”며 내게 바싹 다가앉는다. 실수를 지적할 때에도 “완성도를 크게 그르쳤다”고 표현하면 자칫 붉어질 수도 있는 얼굴에 피시식 웃음이 떠오르게 된다.
곰곰 돌아보니 글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구실로 남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의 완성도를 소홀히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품 구상을 한다거나 원고 마감일이 다가왔다는 핑계로, 원고 교정을 본다는 이유로, 글 쓰다 머리를 좀 식혀야 한다는 구실 등으로…….
‘주말 에세이’ 집필을 계기로 남편 역의 완성도, 부부 대화의 완성도, 나아가 매사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결국 완성도가 높은 인생을 살게 되지 않겠는가. “완성도를 높이라”는 말은 비록 사람마다 기준은 다 다를지라도 “최선을 다하라”는 주문과 상통한다. 최선을 다해 추수감사절 식탁을 정성껏 마련한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올해 칠면조 요리는 완성도가 매우 높았어.”아들 내외가 칠면조가 맛있다며 배불리 먹고 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