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은 그 누구보다 권력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왕위를 얻기 위해 배다른 동생들을 죽였다. 그 뿐이 아니다. 왕위 쟁탈에 결정적 도움을 준 처남들, 또 장인까지 죽였다. 사돈도 역모로 고변케 해 숙청했다.
자신의 그 잔악한 행위 때문인지 태종은 재위 시 사관(史官)을 몹시 꺼렸다고 한다. 그의 사후 세종은 태종실록이 몹시 궁금했다. 사관이 어떤 평가를 내렸나 해서다.
그러나 사관과 신료들이 반대했다. 왕이 보면 누가 바르게 사초를 기록하겠는가 하며 막고 나선 것이다. 세종은 깨끗이 단념했다. 이것이 하나의 전례가 돼 조선조의 엄격한 사초 관리제도 전통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역대 왕의 행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정리한 공식 국가 기록이다. 이 책은 그 방대함에 있어 세계 유례가 없는 한민족의 소중한 기록유산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사초(史草) 작성에서 편찬까지 사관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사초에 대해서는 사관 이외에는 국왕조차도 볼 수 없게 하여 기록의 신빙성을 확보했다. 그 점이 인정돼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록됐다.
‘임금도 열람할 수 없다’는 전례가 그러나 후세에 한 번 무너진다. 연산군이 실록을 본 것이다. 그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숙청할 명분을 얻기 위해 선대의 실록을 들춰봤고 사초를 쓴 사관 김일손을 참살했다.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시작이다.
제 아무리 폭군이라고 하지만 연산군이 선대 성종실록을 모두 열람한 것은 아니다. 사관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쟁점이 된, 김종직의 조의제문 관련 부분만 발췌해 본 것이다.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대한민국 국가기록원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절대왕정시대에 국왕도 손대지 못했던 국가기록들이 이처럼 소리 없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왜 증발했을까. 후세에 라도 그 기록이 공개되면 자신에게 내려질 평가가 미리 겁났던 게 아닐까. 그래서 껍데기만 있는 기록물을 남겼거나 기록물 자체를 아예 파기 또는 감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누구에 의해 이 같은 일이 저질러졌나. 여야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또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누구라고 특정인을 한정짓는 게 현 단계로선 매우 어렵다. 한국적인 권력 속성상 뭔가 심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그렇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해괴망측한 사태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오만으로 굴절된 권력의 얼굴이다. 오기와 착각이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방향성을 잃고 폭주하는 권력은 국민은 물론 역사도 안중에 없었다. 그 권력은 결국 연산군 같은 폭군도 감히 생각 못한 사초 파기라는 폭거를 감행한 것이 아닐까.
불과 6년 전의 남북정상회담 대화기록이 사라졌다. 이는 중대한 국기 문란 사태다. 그 진상은 어떤 방법으로든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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