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들이 한국에 가면 종종 불쾌한 경험을 한다. 지하철 안이든 길거리에서든 사람들이 툭툭 치고 가면서도 도무지‘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몸을 부딪칠 정도로 복잡한 거리를 걷는 일이 드문 데다, 옷깃만 스쳐도“아임 쏘리!”가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백화점에 가면 직원들이 너무 친절해서 거북하고,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너무 무례해서 불쾌하다”는 것이 특히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사람들의 소감이다.
무례하고 사과 안 하기로는 중국사람들이 빠지지 않는다. 사업상 중국에 자주 가는 사업가들 말을 들어보면 중국에서 가장 듣기 힘든 말은‘두이부치(?不起)’이다.‘미안하다’는 말이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아무리 늦게 나와도, 엉뚱한 음식이 잘못 나와도 종업원들 입에서‘두이부치’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중국사람들이‘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하는 것은 체면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고, 섣불리 사과를 했다가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까봐 무의식적으로 피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문화혁명 당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곧바로 죽음과 직결되었던 어두운 기억이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해석도 있다.
얼마나‘미안하다’가 어려웠으면 중국에는 사과 대행업체라는 신종 업종이 등장했다. 주로 연인,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을 상대로 사과는 해야겠는데 잘 안 될 경우 대신 사과해줄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대행업체는 꽃다발, 음악, 마술 등 이벤트를 통해 사과 대상자의 얼어붙은 마음을 풀어주는 데,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아임 쏘리!”가 입에 붙은 미국에서도 진정한 사과는 쉽지 않다. 뭔가 잘못을 해서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쳤거나 심리적 상처를 주었을 경우, 곧바로‘미안하다’고 하면 될 것을 사과를 하지 않아 문제가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다.
‘미안해가 제일 어려운 말 같아(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라는 엘튼 존의 노래도 있지만 현대인들에게 사과는 특히 더 어렵다고 한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춰야 가능한 데, 나르시시즘이 강한 요즘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미안해’가 어려운데 평소 추앙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사과는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첫 대국민 사과가 아니함만 못한 사과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인사과정에서 무려 12명이 낙마한 인사실패와 관련, 국민들에게 사과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모양새가 너무 무성의해 보인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해도, 비서실장이 대통령 대신 사과를 하면서 그나마 남을 시켜 읽게 한 것이다. 인사위원장을 겸한 청와대 비서실장은‘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앞으로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딱 두 문장을 청와대 대변인에게 대독하게 했다. 사과에 걸린 시간은 17초.
사과의 기본은 진정성인데 17초짜리 대독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낀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불통 이미지는 이래서 계속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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