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 같지만 한국 영화배우들이 스크린 쿼터 축소에 반대한다며 들고 일어나 시위를 하던 적이 있었다. 지금부터 7년 전인 노무현 정부 때 이야기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앞두고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극장이 의무적으로 한국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일수를 연 146일에서 73일로 줄이기로 했는데 한국 영화인들이 이렇게 되면 한국 영화 산업이 망한다며 거리로 나온 것이다.
2006년 2월 8일에는 영화인 1,000여명이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 대회’를 광화문에서 개최, 안성기, 최민식, 하지원, 현빈, 이나영 등 많은 배우와 동국대 영화과 재학생 등이 참석해 명동성당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이에 앞서 장동건은 6일 서울 광화문에서 안성기, 박중훈에 이어 세 번째 주자로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 한국영화 점유율과 관객 수는 오히려 스크린 쿼터 축소 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 67편에 불과하던 연간 한국영화 개봉편수는 2009년에는 119편, 2011년 151편, 2012년 150편을 넘겼다. 한국영화 월별 관객 수는 8개월 연속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지금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82.9%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2월 한 달 한국 영화 관객은 1,800만으로 작년에 비해 1.8배나 늘었다. 오히려 멸종 위기에 놓인 할리웃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 쿼터제가 필요한 형편이다.
이같은 한국 영화의 우위는 작년 ‘도둑들’ ‘광해’에 이어 ‘베를린’ ‘7번방의 선물’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 영화는 스토리 전개가 한국인들 입맛에 맞는데다 제작 기법도 할리웃 블록버스터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이처럼 한국 영화 수준이 높아진 것은 많은 영화인들이 직접 미국으로 건너와 영화를 배웠고 그동안 할리웃 영화들과 겨루며 경쟁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할리웃 영화가 한국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병헌, 배두나, 박찬욱 등 한국 영화인들의 할리웃 진출은 오히려 활발해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스크린 쿼터제 축소는 한국 영화계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케 하는 계기가 됐다. 엄청난 제작비와 하이텍 기법으로 무장한 할리웃 영화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그에 못지않은 양질의 영화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힘들게 경쟁하기보다는 보호막 안에서 안주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편하기는 할지 몰라도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가만히 있어도 편히 살 수 있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자들의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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