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원조는 미국이다. 연방정부 공무원 가운데 연방의회의 동의가 필요한 자리는 1만6,000개에 달하며 주요 직책은 며칠씩 계속되는 청문회에 나와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절차는 대개 정책적 입장을 확인하는 일에 집중된다. 청문회에 나오기 전 이미 개인의 신상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치기 때문이다.
사전 후보검증에는 백악관의 인사국과 연방수사국,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회 등 연방기관들이 총동원돼 납세, 교통법규 위반, 경범죄 위반, 소송 진행상황에 이르기까지 232개 항목에 대해 꼼꼼한 조사를 벌인다. 그런 만큼 의회 청문회에서 개인적 비리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한국의 인사청문회는 다르다. 인사권자의 임명이 이뤄진 후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전 검증이 있었다지만 미국처럼 철저하지 않은 관계로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곤 한다. 후보자들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비해 한국의 공직자 검증이 훨씬 더 혹독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재미한인으로 한국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임명돼 기대를 모았던 김종훈씨가 임명 보름 만에 후보를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한국의 주요부처 장관으로 취임해 국가에 기여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던 많은 재미한인들은 실망감과 함께 재외한인을 따스하게 보듬어 주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원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 후보자는 사퇴 회견에서 “대통령 명령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돌연 사퇴한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여론도 많다. 조국에 헌신을 결심했다는 사람이 그리 쉽게 그 마음을 접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김종훈씨의 사퇴를 둘러싸고 갖가지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 정보국 활동 전력 논란을 비롯해 국회 청문회를 넘는 과정에서 제기될 것으로 보이는 의혹들과, 미국국적을 포기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 등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왜 돌연 장관후보 사퇴를 결심했는지 진짜 속사정은 그 자신만이 알 것이다.
김 후보자는 한국의 사정에 대해 잘 아는 1.5세 재미한인이다. 그가 장관직을 제의받았을 때 혹독한 검증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비단길 즈려밟으며 한국으로 금의환향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거나 착각이다.
일단 장관직을 수락한 이상 검증절차를 견뎌냈어야 했다. 설사 약간의 상처를 입더라도 이 과정을 이겨내 장관직을 잘 수행했으면 하는 것이 대다수 한인들의 바람이었다. 새로운 시도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김종훈씨의 장관직 임명이 사퇴로 귀결되면서 이와 관련된 당사자들 모두가 패자가 됐다. 김종훈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임명한 대통령은 스타일을 구겼다.
그리고 조금은 무책임했던 그의 전격 사퇴로 재외한인들의 크레딧에도 금이 가게 됐다.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언제 다시 김종훈씨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기회가 다른 재외한인에게 주어지게 될지 생각해 본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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