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장애선교센터 초청으로 미주순회 찬양 및 간증집회를 갖는 장애인 박모세씨와 어머니 조영애씨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한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평창 스페셜올림픽
애국가 불러 감동물결
박모세씨 순회 공연
“처음엔 그저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살아서 엄마 옆에 있게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만약 한국에 ‘모세의 기적’이 있다면 우리 아들일 겁니다”
지체·시각·지적장애를 딛고 기적을 노래하는 박모세(21)씨가 남가주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러 왔다. 누구나 쉽게 부르고 듣는 흔한 노래인데 유난히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청년. 힘겹게 세상의 빛을 본 모세가 부르는 노래는 그 자신에게, 그리고 노래를 듣는 모두에게 기적을 전한다.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서 아들이 부르는 애국가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 전날 모세가 가벼운 감기증세를 보이는 바람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그냥 아들이 쓰러지지나 않는지 쳐다보기만 했죠”
박모세씨와 함께 LA를 방문한 어머니 조영애(49)씨는 임신한 아들이 뒤쪽 머리뼈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순간 기적을 느낀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늘 선택을 강요받았다는 조씨는 “임신 5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뇌가 머리 밖으로 흘러나오는 뇌류 판정을 받았죠. 병원에선 생존 확률이 0%라며 유산을 권했지만 모세는 세상에 나왔고 대뇌 70%, 소뇌 90%를 절단하는 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죠”라고 그 당시를 설명했다.
뇌 대부분을 잘라냈기 때문에 보고, 말하고,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애가 너무 심해 살 수가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 18개월쯤 뇌수가 흐르지 않아 한 차례 더 큰 수술을 받았다.
“모세가 5세 때 말문이 갑자기 터졌는데 사도신경이 이어져 나오는 거에요. 듣고 기억했던 기도문을 무의식 속에 내뱉었나 봐요. 그리고 7세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 모든 장애도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의 기도 앞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이 지닐 수 있는 모든 장애를 지녔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모세는 노래로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2002년 삼육재활학교 초등학교 시절 여자 프로농구 경기에서 애국가를 부른 것을 시작으로, 2009년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그리고 지난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맑고 힘찬 목소리로 애국가를 끝냈다.
조씨는 “지금도 오른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고 왼쪽도 희미하게 사물을 짐작하는 정도다. 오른쪽 손은 거의 쓰지 못하지만 모세가 체험한 기적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믿기에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조이장애선교센터(대표 김홍덕 목사)가 주최하는 찬양 및 간증집회 ‘모세, 기적을 노래하다’의 자세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3월6일 토랜스조은교회 ▲8일 풀러튼장로교회 ▲9일 디사이플교회 ▲10일 생수의강 선교교회 ▲15일 LA 침례교회 ▲16일 세리토스장로교회 ▲17일 세계비전교회 ▲20일 샬롬교회 ▲4월21일 인랜드교회 ▲4월24일 동신교회 ▲4월26일 은혜한인교회
문의 (714)525-0569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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