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미국과 이란 레슬링 선수들 간에 친선경기가 벌어진 것이다. 이란과 미국의 레슬링 선수들은 테헤란 한 경기장의 매트 위를 구르면서 기량을 겨뤘다. 이란 관중들은 승부를 떠나 양국 선수들의 선전에 환호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경기 후 미국 선수단이 오른 버스는 몰려온 이란 관중들로 인해 경기장을 떠나기 힘들 정도였다. 혹독한 경제제재로 인한 이란인들의 반미감정이 극렬하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레슬링은 이란인들에게 ‘국기’로 사랑받는 종목이다. 그런 레슬링이 올림픽 퇴출 위기에 처하자 전통적인 레슬링 강국들이 테헤란에 모여 레슬링 구하기에 머리를 맞대고 내친 김에 친선경기까지 벌인 것이다. 미국과 이란은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이지만 레슬링 구하기에서만은 동지적인 입장에 섰다. 이란의 한 언론은 미국이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언급한 것을 빗대 이란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를 ‘레슬링의 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스포츠는 국적과 이념을 불문하고 전 세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사랑받는 문화이다. 그런 까닭에 스포츠가 정치와 경제, 그리고 외교에 미치는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외교 분야에서 스포츠는 국제정세까지 바꿀 정도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고전적인 예가 미국과 중국 간의 ‘핑퐁외교’이다. 1971년 나고야 세계선수권 대회 후 미국선수단이 중국을 방문해 경기를 가진 것이 계기가 돼 급기야 닉슨의 방문이 성사되고 양국 수교로까지 이어졌다.
1990년대 마이클 조던과 함께 시카고 불스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NBA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이 전격적으로 평양에 들어갔다. 미국의 대표적인 농구 묘기단인 글로브트로터스 선수 몇 명과 함께 평양에 간 로드맨은 아이들을 위한 농구교실과 친선경기 등을 벌이며 스포츠 외교를 하게 된다.
온 몸에 현란한 문신을 하고 얼굴 여기저기에 피어싱을 해 ‘벌레’라는 별명까지 붙은 로드맨은 끊임없이 기행을 벌여 온 NBA의 대표적인 악동이다. 자본주의 자유분방함의 극치라 할 수 있을 로드맨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에 들어가 스포츠 외교에 나섰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로드맨을 처음 본 한 북한주민은 “괴물 같다”며 놀랐다는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농구는 축구와 함께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NBA 팬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0년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울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은 마이클 조던이 사인한 농구공을 김정일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도 어린 시절 시카고 불스에 푹 빠졌던 농구광이다. 불스 전성기의 한 축이었던 로드맨이 북한에 들어간 것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미 농구단의 북한방문에 미국정부는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농구단의 짧은 북한방문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농구단 앞에 깜짝 등장이라도 한다면 핵문제와 미사일 등으로 경색돼 있는 미국과의 관계에 변화를 원한다는 조심스런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농구가 두 나라 간의 냉랭한 관계를 깨뜨려 주는‘아이스브레이커’ 역할을 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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