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한인들 지갑에는 저마다 추억거리가 하나씩 들어 있다.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첫날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대게 비행기 발권표를 간직한다.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을 떠나던 그날의 기억은 생각할수록 애잔하고, LAX나 JFK 공항에 도착한 날은 두려움과 설렘의 연속이다. 모두가 그날의 ‘초심’을 기억하며 미국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
1902년 12월22일 감리교인 50명, 인천 제물포항 노동자 20명, 농부 등 지원자 51명은 조상을 등진다는 죄책감을 이겨내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났다. 상선 겔릭호를 타고 1913년 1월13일 오전 3시30분 호놀룰루항에 정박 후 신체검사를 통과한 이들(남성 48명, 여성 16명, 어린이 22명)에게 낯선 나라의 냄새는 어땠을까.
당시 통역을 맡았던 현순은 포와유람기를 쓰며 “낯선 땅을 찾아 생활방식과 풍속이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기 위한 첫 시련은 참으로 고달프고 어려웠다. 심한 노동을 견디지 못하여 그 중 의지가 약한 자들은 심한 사향병에 걸려 생활의 안정을 못 찾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으니…”라고 적었다. 1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민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민선 조로 불리는 7,226명의 개척정신은 고된 노동에 따른 눈물과 한, 조국을 잃은 슬픔과 해방의 기쁨이란 역사로 기록됐다. 소설보다 진한 감동과 여운도 담겨있다.
이민역사 110년이 지나 현재 한인인구는 1만3,959배로 급증했다. 2010년 연방센서스 공식집계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인구는 142만3,784명이다. 한국의 웬만한 광역도시 인구 전체가 바다를 건너온 온 셈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며 더 나은 삶과 희망이란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고 있다. 다만 우리네 삶이 담긴 110년이란 한인 이민 역사를 다음 세대에 전승하지 못하는 ‘무관심’은 늘 아쉽다.
110년이란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인사회는 단결과 분열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우리네 삶의 자세는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인 가정의 억척스러운 삶의 자세를 놀라워했다. UCLA 한 교수는 “지난 100년 간 한인사회가 성장한 모습은 미국 역사 측면에서도 놀랍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2005년 12월 미국 연방의회는 한인사회의 공로를 인정, 매년 1월13일을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로 기념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인이라면 110년 이민사와 의미를 한번쯤 곱씹으면 좋겠다. 그 안에 우리가 있다. 1903년 1월13일부터 2013년 1월13일까지 미주 한인사회는 더 나은 삶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경제적 부도 일궜다. 이제는 우리네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알릴 때도 됐다. 다민족·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한인 역사와 문화적 토양을 굳건히 하는 일은 우리네 자존과 맞닿기 때문이다.
<김형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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