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고정 의료수가를 약속한 전국 각지의 병원으로 수술을 필요로 하는 종업원들을 보내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종업원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수술비는 물론 항공비와 숙박비까지 지급받는다.
네바다에 거주하는 60대 부부 캐롤과 에드 보겔은 지난달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 리조트에서 1주일을 함께 지냈다. 캐롤의 말을 빌리자면“젊었을 때 하지 못한 신혼여행”을 황혼녘에 즐긴 셈이다. 원래 일정은 1주일이었지만 이들은 체류기간을 3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해변에 위치한 아일랜드 호텔에서 한 달간 생활하려면 숙박비만 해도 장난이 아닐 터인데 이들은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단 한 푼도 없으니 신경이 쓰일 턱이 없다. 숙박비뿐 아니라 항공료도 이들이 상관할 사항이 아니다. 게다가 덤으로 1,000달러의 용돈까지 받았다.
크로거 등 일부 기업, 전국 각지 전문병원과 계약
모든 경비 회사가 부담해도 로컬 병원보다 저렴
진료의 질 높고 후유증 없어 수술 직원들도 만족
무슨 경품잔치에 당첨됐거나 신용카드사가 우량고객에게 제공하는 특별 사은행사에 참여한 게 아닌가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보겔 부부가 뉴포트비치 리조트를 찾은 것은 캐롤의 고관절 교체수술 때문이다. 고관절을 인공관절로 교체하자면 다섯 자리 숫자의 돈이 들어가지만 보겔 부부의 부담은 전혀 없다.
이들의 ‘물주’는 에드가 몸담고 있는 언론사 ‘스티븐스 미디어’다. 라스베가스에 본부를 둔 스티븐 미디어는 고관절과 무릎관절을 교체해야 하는 직원과 부양가족을 전국 각지의 지정 병원으로 보내 사전 합의된 가격에 수술을 받게 한다.
보겔이 이용한 오렌지카운티 뉴포트비치 정형병원도 스티븐 미디어의 지정병원 가운데 하나다.
대형 식품업체인 크로거(Kroger Co.) 역시 동일한 프로그램을 시행중이다. 크로거는 이미 20여명의 직원들을 어바인 소재 정형병원인 ‘호그 오소페딕 인스티튜트’를 비롯,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의 전문 병원으로 보내 고관절과 무릎관절 교체수술 및 척추융합 수술 등 전문적 외과치료를 받도록 했다.
월마트 역시 내년부터 ‘수술 샤핑’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이에 따라 월마트 종업원들과 그들의 부양가족은 미국의 6개 주요 병원그룹에서 심장수술, 척추수술, 이식수술 등을 전액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수술비뿐 아니라 여행경비와 숙박비까지 회사가 전액 부담한다.
기업들은 외지의 병원으로 수술을 받으러 가는 직원들에게 디덕터블을 면제해 주고 2,500달러의 보너스를 주는 등 푸짐한 혜택을 제공한다. 이유는 단 하나, 이런 방식을 통해 상당한 의료비 절감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의료업계는 행위별 수가(fee-for-service) 방식으로 치료비를 산정한다. 의사와 병원, 랩 등 환자의 진료에 관여한 모든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이 각각 별도로 치료비를 청구하는 방식이다. 치료과정에서 합병증 등으로 발생한 경비는 고스란히 진료비에 추가된다.
반면 스티븐스 미디어, 크로거, 월마트 등은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의 행위별 수가에 상관없이 중개인을 통해 병원 측과 사전 합의한 액수만을 지급한다.
병원 쪽에 다소 불리한 거래가 아닌가 싶겠지만 새로운 환자를 꾸준히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 손해 볼 게 없다.
기업들은 수술을 필요로 하는 종업원들의 등을 떠밀어 강제로 외지의 병원으로 보낼 수 없다.
하지만 가까운 곳의 병원을 찾는 것보다 본인 부담이 훨씬 덜하다는 점 때문에 경비가 많이 드는 수술을 해야 하는 종업원들은 기꺼이 먼 길을 떠난다.
예를 들어 크로거가 선정한 전국 19개 지정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종업원들은 전체 경비의 10%만을 본인이 부담한다. 반면 고용주의 명단에 오르지 않은 거주지 근처의 병원을 선택할 경우 종업원의 본인 부담은 전체 진료비의 25~50%로 늘어난다.
작가인 캐롤 보겔도 처음엔 캘리포니아까지 날아가 고관절 수술을 받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스티븐스 미디어의 인력관리 담당 매니저로부터 치료와 관련한 일체의 경비를 회사 측이 부담한다는 얘기를 들은 뒤 두 말 없이 남편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캐롤은 “만약 네바다에서 수술을 했다면 보험적용을 받았더라도 8,000~9,000달러는 쉽게 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을 받은 왼쪽 고관절부위의 통증이 몇 년 만에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캐롤은 아예 오른쪽 고관절까지 교체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체류기간을 3주 연장했다. 물론 수술비와 숙박비를 포함한 모든 경비는 스티븐스 미디어가 100% 부담한다.
올해 크로거가 지정한 타주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는 모두 21명이고 이들 가운데 합병증을 일으켰거나 재입원을 한 케이스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크로거의 직원 베니핏 담당 부사장 테레사 몬티는 무릎관절과 고관절 교체수술의 경우 지정병원에 평균 3만달러를 지불한다고 밝혔다. 다른 일반 병원에 비해 15%가량 저렴한 수준이다.
기업과 병원, 보험사를 연결시켜 주는 교량역할은 브리지헬스(BridgeHealth)라는 중개회사가 담당한다.
브리지헬스는 현재 국내 45개 병원과 수술비 고정가격 계약을 맺고 있다. 이들 중에는 무릎관절과 고관절 교체수술을 1만9,000달러에 해주기로 한 곳도 있다.
수술비는 병원에 따라 1만5,000~11만달러에서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가주 공무원 은퇴연금은 고관절과 무릎관절 교체수술비 지급액을 현재 3만달러로 제한한 상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수술을 필요로 하는 직원들을 브리지헬스가 소개한 지정병원으로 보냄으로써 적지 않은 비용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보호 단체들은 환자가 수술을 받기 위해 타지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스티븐스 미디어의 인력관리 매니저인 신디 메이어스는 타지에서 수술을 받고 온 직원들에게 후속 진료를 해줄 로컬 의사를 찾기가 다소 힘든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경비절감 효과가 크고 지정 병원들의 진료 수준이 높은데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 역시 만족을 표시하는 등 전반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한편 70개 병상을 지닌 어바인 소재 호그 오소페딕 인스티튜트의 외과과장 제임스 캐리루엣은 “최상급의 의료 서비스를 저렴한 고정가격에 제공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도 무턱대고 모든 환자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환자의 의료기록을 요구해 읽어본 뒤 직접 개별 전화 인터뷰를 한다. 수술에 따른 합병증 위험이 높은 환자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합병증이 발생할 경우 1인당 평균 7,600달러의 추가비용이 발생하지만 병원 측은 이미 합의된 고정가격 이상을 청구할 수 없다. ‘위험’ 환자를 추려내야 병원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위험 환자’ 입장에선 화가 날 만하지만 100% 완벽한 제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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