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 유진오 박사는 1938년 발표한 <현대적 다방이란?>이란 글에서 문인들이 다방에 자주 출입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차를 파는 다방과 기분을 파는 다방으로 구분하면서, 기분을 파는 다방을 ‘본격적인’ 다방이라 일컬었다. 그러면서 다방을 ‘현대 지식인의 무기력, 무의지, 무이상, 권태, 진퇴유곡의 처지를 나타내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 까닭으로 “당대 지식인들이 다방에 ‘멍’하니 앉아 교양과 고민이 있는 ‘체’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방에서 ‘멍’과 ‘체’를 하며 허송세월하는 1930년대 모던보이 모던걸을 비판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실에 쫓겨 차와 커피가 주는 고요한 기쁨을 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슬펐다.
여느 또래들처럼 카페에 자주 가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서일 뿐, 어느 때고 여유 있는 ‘멍’도 교양 있는 ‘척’도 없었던 것 같다. ‘멍’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차리며 살고, 어떠한 ‘체’도 없이 쿨한 일상을 보내는 듯하나 여전히 무기력과 무의지를 토로하는 기이한 우리네 삶.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짧은 낭만도 자칫 허세로 둔갑하게 만드는 각박한 세상의 날선 잣대들. 각성과 쿨함 역시 정답은 아니었을까.
‘가짜 배고픔’이라는 게 있단다. 실제 배가 고프지는 않으나, 크게 기뻐서 혹은 우울함이나 수치심 때로는 복수심에 느끼게 되는 배고픔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간의 본능적 행위가 특히 감정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먹는 것 역시 그렇다는 얘기다.
아무리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날카로운 판단력을 자랑해도, 과잉 축적된 감정은 여지없이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낳고 만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렇게 밀접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비단 배고픔뿐일까. 많은 이상 행동들의 뿌리가 바로 이 감정일 것이다. 기념일 등 특정일만 되면 폭식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셀러브레이셔널 이터(Celebrational Eater)’라는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네 설, 구정이다.
혹시 명절의 즐거움이 아닌 다른 이유로 식욕을 느끼고 있다면 잠시 뇌에 ‘멍’이라는 여유를 선물해보자. 각성을 요하는 치열한 현실을 살고 있다면 허송세월에 대한 염려는 마음 놓고 뒤로 물려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체’를 해보자. 잠시 절대 시시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며
지난 한해 수고한 또 앞으로 1년 동안도 멋지게 살아갈 스스로에게 교양의 시간을 선사해보는 거다.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위안하며 미뤄놨던 말 못할 고민들을 다시 꺼내 진지하게 곱씹기도 하면서.
‘멍’과 ‘척’ 혹은 과한 경각심과 덤덤함. 어느 극단도 아름다운 현실을 완성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새로이 시작되는 한 해 동안에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하고 조화로운 유기를 위해 적당한 경각심과 덤덤함 그리고 가끔 ‘멍’과 ‘척’의 여유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지 모를 기력과 이상을 꿈꾸며 말이다.
노유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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