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 어떤 곳인가. 미국의 수도를 넘어 세계의 수도로 일컬어지는 막강 정치 도시이자 미국 상류사회의 텃밭이다. 그래서 미국의 퍼스트 커플(First Couple)이 기거하는 백악관(White House)이 있는 곳이며 섣불리 말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수 있어 절대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 글은 다분히 필자의 워싱턴 생활 36년을 통하여 이 곳에서 만난 부부 중에서 특별히 생각나는 한 부부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은 지극히 주관적인 소회임을 밝혀 둔다.
그러니까 어림잡아 여덟 해 전인 듯하다. 지금은 세계 여행기 기고가로 필명을 날리는 L 동문 작가와 함께 동창회 일을 거들고 있던 어느 날, 단골 Y 치과에서 천정을 향해 입을 잔뜩 벌리고 누워 정기 검진을 받는 중의 일이다. 검진 치료 중에 치과 조무원이 펜을 쥐어 주며 받침판 위의 서식에 사인을 하라기에 내용을 보자고 할 상황도 아니어서 시키는 대로 해 주고는 치료를 끝내고 나오던 중 불현듯 궁금증이 일어 내가 아까 무슨 서류에 사인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강한 칫솔에 쓸려 골이 파진 송곳니를 녹두알 반쪽만큼 신경치료 후 때우는데 1,700여 달러를 내겠다는 동의서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갈 때마다 치료비가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있었는데 이 때는 참지 못하고 동의서를 찢어 버리고 화난 얼굴로 나와 버렸다.
그리고는 어디를 새 단골치과로 정할 것인가 궁리하던 중 워싱턴의 정보통이요 재간둥이인 L 동문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자기는 후배이며 임원인 Y 동문 부인의 치과에 다닌다는 대답이었다. 도사 L 씨가 단골로 다니는 치과라면 반드시 그만한 연유가 있으리란 믿음으로 더듬더듬 찾아간 곳이 훼어팩스 시티에 있는 차명자 치과였다. 연유를 설명하고 치료를 끝낸 후 치료비 청구액을 보고는 놀라 멍청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275달러, Y 치과의 6분의 1 수준이다. 남편의 동문선배라는 특혜를 호되게 받았다는 미안함을 안고 돌아왔다.
그 뒤로도 치료를 받을 때마다 ‘특혜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한번은 우연히 사무여직원이 “10 퍼센트 할인해 드리랍니다”하는 말을 듣고서야 동문선배 특혜는 10% 정도이고 치료비 수준이 기본적으로 매우 싸게 책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쌓인 후에 필자가 한글교육 후원 모금운동을 펼치면서야 이 치과의 저렴한 치료수가에는 인간사랑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치료를 갔던 길에 주춤주춤 조심스럽게 한글교육 모금 운동 이야기를 하며 좀 참여하시라고 어렵게 운을 떼고 돌아 나오려는데 불러 세우시더니 미소 띈 얼굴로 수고하시네요 하며 체크 한 장을 건네 주셨는데 금액을 보고는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일금 1,000달러! 그리고는 지난 7년, 한 해도 쉬지 않고 후원 부탁 통지를 받자마자 지체 없이 1착으로 1,000 달러씩을 또박또박 보내주셨다. 작년 말에는 모범후원자 감사패를 드려야겠는데 사양하시며 끝내 행사장에 나오시질 않으셔서 별 수없이 배달해 드린 일도 있었다.
남편이며 동문후배인 Y 씨는 동창회 행사 때마다 자원하여 궂은 일을 맡는 사람인데다 한글교육 후원 모금 골프대회에는 부인의 후원금도 있으니 핑계 대고 참가비만 낼 수도 있으련만 500 달러씩 별도 후원을 한다. 그가 바로 원주 까리타스 후원회장이라면 왜 그들 부부가 원앙 같은 한마음 부창부수로 사회 참여와 기여의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지 수긍이 간다.
필자가 이들 부부를 아름답게 보는 진정한 이유는 그렇게 부유한 형편이 아닌 듯한 데도 돈을 잘 내서가 아니라 인간애의 실천을 겸손의 보자기로 덮으려는 진지함을 보기 때문이다. 이순신 인간 완성의 기초가 된 겸손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 부부를 워싱턴의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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