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살아가는데 급급한 나머지 매년 찾아오는 절기에 봄나들이, 여름 물놀이, 가을 단풍 구경, 그리고 낭만적인 겨울 풍경 구경은 고사 하더라도 동네 공원도 제대로 마음 놓고 둘이서 가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런 나들이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들 좋아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만의 나들이를 즐기며 살아가고는 하는데 물론 우리 부부 역시 그런 나들이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는 게 무언지 하루하루 실생활에 파묻혀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틈이 없었고 집 밖으로 눈 돌릴 사이도 없이 오직 이민 생활에만 몰두하면서 아내와 나는 가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서 아들, 딸을 바르고 맑게 키웠다는 자부심 속에 있으면서, 아내가 가끔 나에게 “당신 나와 함께 여행이나 나들이 한 번 안 가볼래요”라고 물어 볼 때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좋아요, 갑시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거의 혼자서 가게를 운영해 오다시피 했기 때문에 좀처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남편인 내가 잘 알고 있기에 긍정적인 반응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기회가 비로소 온 것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특히 우리 아내를 어여쁘게 봐주셔서 나들이 문을 열어 주신 것 같다. 며칠 전에 UN가입 20주년을 기념하는 뉴욕코리아 페스티벌이 뉴저지에서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아내는 이번 기회에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도 풀 겸 가보자고 제안을 해서 전적으로 찬동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들이 그 나들이 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고 여행사에다 예약까지 해 두었다. 마침내 우리 부부는 엘리콧 시티 롯데 앞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어린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 느낄 법한 즐겁고 흥분된 기분이 우리가 마치 벌써 페스티벌 공연장에 가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아마도 54명이 탑승한 사람들 모두의 얼굴 표정이 우리와 같지 않았을까. 이것이 16년만의 아내와 역사적인 나들이이기에 즐겁기만 했다.
공연장에 4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기 전, 안내원이 탑승객 전원에게 연두색 팔찌를 나눠 주면서 팔에 끼고 입장하면 무대 앞쪽에 있는 VIP 좌석 뒷줄 부분에 앉을 수 있다고 하였다. 공연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전부가 유명세를 타는 가수로서 동방신기, 마야, 사이니, 2PM , 비스트, 김태우 등 젊은 가수와 중년층이 좋아하는 설운도, 태진아, 인순이 패티 김 기타 등등이 출연했다.
오후 6시가 넘어 공연은 시작했고 젊은층 가수들이 나올 때마다 아내는 좋아라 박수를 치면서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그녀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집에서도 자주 그런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데, 그 때마다 그녀는 그 가사와 곡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리듬 일부가 묻혀 있기에 좋다고 했다. 그리고 젊음도 다시 되 찾는 기분이라고 했다. 환하게 비추어진 화려한 조명 속에서 우연히 아내가 소녀처럼 설렘으로 활짝 웃는 얼굴을 보았을 때 나 역시 즐거웠고 이 공연을 보러오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그 황홀하고 현란한 조명은 소녀 같던 아내의 얼굴과 함께 그녀의 얼굴에 어느새 자리잡은 잔주름들을 함께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 황홀하고 현란한 조명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던 아내의 얼굴에 비춰질 때 맑게 박장대소하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니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잔주름들이 오늘은 왠지 눈가에 많게 보였다. 그 잔주름들이 내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영광스러운 가슴에 있는 훈장처럼 보였다.
그 속에는 그동안 살아온 온갖 희로애락과 온 몸을 바쳐 가족과 집안을 굳건히 지켜온 세월의 흔적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나는 아내의 잔주름이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빛나고 훌륭한 삶의 값진 훈장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싶다.
홍병찬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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