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워싱턴 포스트는 일본의 원전 사고와 도쿄 전기회사 사장에 대한 기사를 냈는데, 그 제목에는 “사과의 나라(land of apology)”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 전기회사의 사장이 사고가 난지 6주가 지나서야 원전사고로 피해당한 주민들의 수용소에 나타나 사과를 한 것은 참 의외의 일로 주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기사 내용이다.
일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귀에 박히도록 훈련받는 가정교육의 핵심되는 것이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이라 들었다. 지금은 S대 교수로 있는 친구가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할 때 지도교수가 저녁에 초대했는데, 직역하면 ‘제가 당신을 저희 집의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실례를 범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했다. 그곳에서 공부하며 일본 문화와 사회를 들여다 본 친구는 일본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민족이라 했다. 과거 막부시대에 힘을 쓰던 사무라이들을 건드리면 쉽게 목이 날라가는 시절을 오래 거쳤기에 사람을 무서워하여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아마도 일본 사람들을 예의와 배려를 미덕으로 삼는 민족이 되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 이들이 자기 민족끼리는 배려를 잘 할지 모르지만, 이웃 나라에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아직도 잘못의 인정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이 나라를 “사과의 나라”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다.
역사적 배경은 어떻든 간에 남에 대한 진실한 배려는 참 아름다운 미덕으로 이 세상 삶을 조금은 더 여유 있고 살맛나게 한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 자신 밖에는 모르는데, 사람의 성숙도는 남에 대한 배려로 측정된다고 볼 수 있다. 남의 입장이 되어보고 깨달은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설 ‘빙점’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기독교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살며 생각하며’라는 수필집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야꼬는 소설을 쓰기 전에 집에서 잡화상을 경영했는데, 얼마 후 바로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비슷한 잡화상이 생겼다. 이 가게의 출현으로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아야꼬에게 남편 미우라씨는 ‘아야꼬, 물건을 적게 사들여’라고 말했고,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묻는 부인에게 “그래야 돼. 될 수 있는 대로 ‘그 물건은 저쪽 가게에 있을 테니 그곳으로 가 보세요’라고 말해야 돼”라고 했다.
비록 자기네 가게가 망하더라도 자기들은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이 되지만, 저쪽 가게는 아이들도 있고 하니 가게가 잘 되어야 한다고 남편이 주장했다는 이야기다. 이 말대로 아야꼬는 정말 조금씩 물건을 줄였지만 매상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은 ‘빙점’ 소설의 당선으로 더 이상 가게 운영이 필요치 않아 가게는 문을 닫아버렸다.
이 정도는 안 되겠지만 본인의 처형도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진 분이다. 잠시 꽃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는데, 그분 남편의 말에 의하면 값에 비해 너무 많이 주기도 하고, 또한 교회를 비롯해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는 종종 무료로 주기도 하여 결국 이익을 남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들었다. 처형의 본직은 간호사로 병원에서는 별명이 ‘천사 간호사’로 통했다. 지금은 소천하신 장모님이 처형댁에 사시면서 들려준 이야기로는, 퇴근길에 야채가게에 들려 야채를 사오라고 하면 처형은 종종 시들고 변변찮은 것을 사왔다는데, 꾸중하는 어머니에게 ‘그래야 남들이 좋은 것을 사가고, 그 가게는 장사가 잘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한다.
가끔 아내를 따라 한국 식품점에 가면 주부들이 조금이라도 더 싱싱하고 좋은 것으로 사려고 악착같이 경쟁적으로 채소를 고르는 손길을 보면 이 처형이 생각난다. 조금은 바보스럽고 손해를 본다 해도 우리 모두 남을 배려하는 여유를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배려는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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