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25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면서 어려운 삶을 살아왔기에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생각이 각별하다.
한평생을 고생에 찌든 어머니께서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훨씬 전에 이생을 달리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순간도 편히 마음 놓고 쉴 수도 없는 인생살이였지만 한 번도 불행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 본적이 없었다.
가끔씩 들려주시는 말씀은 “그저 말은 적게 하고 많이 듣는 쪽으로 하거라, 그러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였다. 그때의 어머니 말씀이 얼마나 각인이 되었는지 지금도 나는 말을 하기 보다는 듣는 쪽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어느 날 밤은 한잠을 자고 깨었는데 어머니의 조용한 흐느낌을 느낄 수가 있어서 “어머이(어머니) 왜 울어” 반문하는데, “아니야 감기기가 있나 보다”하고 격한 음성으로 대답하신다. 얼마 후 알고 보니 이웃집에 사는 내 친구가 그 무렵 엄마 아빠 손잡고 다정하게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신 모양이다.
그 뒤로도 숱한 날 밤에 눈물을 흘리셨겠지만 나에게는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가족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6.25사변으로 인하여 가정이 풍비박산이 되고 객사한 남편의 시신을 찾고자 하는 애절한 마음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기만 당하고서도 원망과 울분으로 생을 보내기보다는 옷깃을 여미며 올망졸망한 4남매를 키우기 위하여 혼신을 다하셨던 어머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가능 했을까.
어머니 인생길의 길벗은 오직 자식들의 보다 낳은 삶이 전부였다. 때로는 어려운 살림살이에 울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기에 가슴에 묻어둔 슬픔이 병이 되어 일찍 돌아 가셨으리라 생각된다. 고국에 갈 때면 어머니의 산소에 찾아가 눈물로 인사하며 어머니의 이생은 많이 힘드셨지요? 여쭈어 보지만 대답은 격한 내 눈물이 대신 한다. 언젠가 내 자식들에게 할머니의 사무친 사랑을 이야기 하는데 아무 감동도 없이 하나의 전설로 듣는 듯해 지금은 혼자서 가끔 추억으로 어머님의 형상을 그리며 감사 기도를 드린다.
작년 봄에도 어머니의 산소를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차창 밖을 바라보니 산과 들이 보였고 봄비에 젖은 나뭇잎들이 제법 찬란했는데 들녘에는 옛날처럼 보리밭으로 푸르지가 않고 특수 재배를 하느라 비닐하우스가 포화를 이루어 어지러운 초원이었다. 저만치서 뿌린 씨앗을 살피는지 바닥에 거의 닿을 듯 엎드린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뭉클한 마음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자주 훔쳐냈다.
아, 저 고요한 엎드림이야말로 질기디 질긴 생명의 본모습이 아니겠는가. 온갖 서러움과 노여움, 그리고 슬픔을 묵묵히 삭이면서 씨앗을 뿌려온 할머니의 그 거룩한 노동 앞에서는 절망조차도 사치일 뿐이다.
온몸으로 살아가는 저 엎드림을 위해 정녕 계절의 봄은 오는 것이리라 믿으며 어려운 여건에도 씨앗을 뿌리는 할머니야 말로 사랑 때문이 아닐까 한다.
손바닥만한 전답에 가지가지 온갖 곡식을 심고 울밑에는 넝쿨 강낭콩을 심어서 가을이면 좋은 열매는 직장 잡아 타 지역에 사는 아들딸들에게 보내기 위하여 올망졸망 백에 넣어 어설픈 포장을 해서 택배로 보내면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을까?
이웃 체면이 두려워 우리 집에 올 때는 값싼 자가용보다는 차라리 영업용 택시를 타고 오라고 말하는 어느 부자 자손들 소리도 있다는데, 그 할머니의 자손들만큼은 주말이나 방학을 통해 할머니의 일을 도와주면서 자연을 배우고 할머니께서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실질적인 산교육을 통해 어머니의 진실한 사랑이 확연히 인식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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