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미술치료 자원봉사를 위해 서울의 한 정신병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난 정신병원 환자들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 다녀온 후 나의 편견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내가 보았던 환자들은 모두 잔인한 세상 속에서 상처받은 여리디 여린 영혼을 지닌 천사들이었으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차마 남을 해하지 못해 스스로를 자해하려던 착한 여인과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외치다 고문받고 세상과 벽을 쌓은 창백한 얼굴을 한 명문대생, 그리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자아를 상실한 가련한 주부 등. 고작해야 한 달에 두세 번 찾아가던 나를 그리도 기다리고 반기며 온갖 정을 쏟던 어린 여학생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요즘 화제 중 하나는 단연 신정아의 자서전, ‘4001’이다. ‘4001’은 바로 그녀가 수감 되었을 당시 자신의 수인번호란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임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 책에 대해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왠일인지 책은 연일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예능프로에서 흔히 말하는 ‘폭로성 일화’ 때문일까?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불과 몇 년 전 그녀에게 돌을 던지며 나체사진까지 공개하던 기자들이 이젠 그녀의 책을 홍보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그녀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부를 챙겨왔다.
그러나 그녀 역시 어쩌면 학력위주의 간판주의와 특권의식으로 가득한 우리나라 사회가 길 러 낸 괴물이란 생각도 든다. 괴물같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4001’은 흥미진진한 ‘다큐 반전드라마’이며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아닐까?
혹여 책속의 내용이 좀 과장되었던들 그녀의 나체사진 공개만 하겠는가. 지금까지 그녀가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겪었던 견디기 힘든 모욕을 감내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에게 접근했던 가면을 쓴 두 얼굴의 사회 인사들과 마지막 자존심마저 짓밟은 기자들에 대한 복수를 꿈꿔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향해 통쾌한 복수를 날렸다.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 승자와 패자가 뒤바뀌는 게임처럼, 우리들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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