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자란 애들하고 대화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이민 2세 자녀들은 미국 사회생활에서 언어적 정서적 장벽보다 부모와의 언어적 문화적 장벽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장벽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가족이 대부분이다. 부모는 자녀가 알아듣기 어려운 한국어로 묻고, 자녀는 부모가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대답하며 서로 ‘대충’ 알아듣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어느 때인가부터는 자녀에게 ‘밥 먹어라,’ 또는 ‘공부해라’ 외에 많은 대화를 하지 않게 된다.
중요한 대화는 밖에서 한다. 자녀는 또래 2세 친구들과, 부모는 다른 이민 1세 부모들과 서로 동감하며 부모자녀 간의 대화 장벽은 역시 ‘이민가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위로한다. 그렇게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가며 마치 한 지붕 아래서 외국인들이 함께 살아가듯 지낸다.
이러한 대화의 부재가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굳이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 결국 대화의 부재가 관계의 부재로 발전하여 갈등을 겪게 된다. 부모자녀 사이에 대화의 부재가 ‘이민가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면 서로 간에 관계의 부재 또한 불가피한 현상이라 볼 수 있어야 하겠지만, 대화의 어려움은 인정해도 관계의 어려움은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모와 자녀의 문화, 가치관, 그리고 언어까지 달라도 가족이다 보니 서로 깊은 관계를 갈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관계’는 이처럼 많은 차이들을 감안하고도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가정이 많다. 문화와 언어가 같아도 원만한 부모자녀 사이를 유지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문화와 언어가 다르면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다. 한 가족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부모와 자녀의 가치관이 달라졌을 때 쯤 “그 동안 별 문제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부모를 자주 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형성되었던 것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부모 관할 하에 묻혀 지내다가 자녀가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색이 드러나면서 부터 비로소 눈에 띄는 것일 뿐이다.
부모자녀 간의 대화 장벽은 ‘이민가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다.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고 해결 할 수 있다. 우선 부모님들은 ‘밥 먹어라, 공부해라’ 이상의 대화를 해보기를 권장한다. 자녀의 가치관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대화를 하다보면 내 아이가 누구인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관심과 노력이 있다면 언어장벽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환경적 제약이 따를수록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며 존중해야만이 부모자녀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민 가정의 환경적 제약들은 대화의 부재를 정당화하는 핑계가 아닌 더욱 더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 바란다.
소재정
미술치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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