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와 키스하는 수녀, 탯줄도 자르지 않은 갓난아기, ‘에이즈 양성 반응’ 도장이 찍힌 엉덩이 사진…. 세계적인 의류회사 베네통은 일련의 파격적인 광고로 그 이름을 소비자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왔다. 베네통의 광고철학은 간단하다. “No publicity is bad publicity”, 즉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것은 실패한 광고라는 것이다. 무관심보다는 악명이 낫다는 것이다. 베네통 광고들은 나올 때마다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효과를 톡톡히 거뒀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제품들과 작품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품질이 좋고 내용이 뛰어나도 대중의 시선을 끌지 못하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어떻게든 시선을 끌지 않으면 도태된다. 사람들은 왁자지껄 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마련이다. 이런 성향을 이용해 시장에서 상품과 관련한 각종 이슈를 요란스럽게 만들어 냄으로써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홍보방식이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이다.
화제의 내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호기심을 갖게 마련이며 이것은 그 상품의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노이즈 마케팅은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다. 미담이든 스캔들이든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 관심을 끌어 모으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이 기법을 남용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갈수록 힘든 일이 되고 있다.
학력위조 파문을 일으켰던 신정아씨가 펴낸 자서전 ‘4001’이 뜨거운 화제다. 책 속에서 자신에게 “지분거렸던” 거물급 인사의 실명을 거론해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름이 거론된 인사측은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하며 전형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신씨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는 지난 시간을 설명할 수 없었다”며 노이즈 마케팅 의혹을 부인한다. 실명 거론이 왜 불가피했는지에 관한 해명치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냉정함을 유지하기 보다는 책에 언급된 내용을 그대로 퍼다 나르며 대중들의 호기심에 영합하고 있다. 실명거론이 정말 마케팅 노림수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이 책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정치인들 사이에는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면 스캔들을 만들라”는 금언이 있다. 무관심보다는 악명이 낫다는 베네통의 광고철학과 일맥상통한다. 가끔 정치인들이 뜬금없는 발언을 하거나 돌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면 틀림없다.
정치인들보다 더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꼽으라면 단연 연예인들이다. 23일 숨진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훌륭한 연기자였지만 동시에 8번의 결혼과 많은 스캔들로 평생 대중의 시선을 모아왔다. 그녀가 밥 먹듯 했던 결혼 하나하나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노이즈 마케팅이 돼 버렸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일시적인 화제를 모으고 물건을 팔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제품과 작품의 생명력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제품과 작품의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노이즈 마케팅은 오히려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밑천은 결국 드러나게 돼 있다. 신정아씨의 책은 일단 관음증에 빠져있는 대중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이 성공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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