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후 식구들과 함께 TV를 보고 있는데 럭키(나의 TV 광고모델 진도개)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끙끙 거린다. 눈빛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가 “럭키가 신음을 하는 것 같다”며 다가왔다. 몸을 유심히 보니 오른쪽 뒷다리 무릎 부분에 큰 혹이 보였다. 혹을 만지니 럭키는 아프다는 듯 신음 소리를 냈다.
지난 12년을 키웠지만 그렇게 아파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개 나이 12살이면 사람 나이로 84살이라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병으로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았지만 이렇게 내 옆으로 다가와 아픔을 호소하기는 처음이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 어느 누구도 이렇게 혹이 자라도록 알지를 못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아들과 아내가 럭키를 만지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아래층 계단 밑에서 나를 기다리며 산책을 하는 럭키. 처음에는 내가 개를 운동시켜 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럭키가 나를 운동시키는 체육 선생이 되어 주었다. 럭키는 밥을 먹을 때 배가 부르면 음식을 남김으로써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가르쳐 준 윤리 선생이었고, 또한 기분이 나쁠 때도 언제나 꼬리를 쳐줌으로써 맹목적인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랑 선생이기도 하다.
가족의 하나로 키운다고 생각했던 럭키이지만 역시 말을 못하는 이유로 난 럭키의 아픔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침마다 같이 걷고 같이 운동을 했지만 럭키는 단 한 번도 아픔을 호소하지 않고 나의 하루를 열어주는 충견이었다.
급히 수의사에게 전화를 하고 그 다음날로 약속을 잡은 후, 우리 식구들은 “아마도 벌에 물렸을거야” 아님 “물 혹일거야”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 다음날 난 아내의 전화가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드디어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종양 이래요” 울음 섞인 아내의 목소리가 얼마나 내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지….
럭키는 혹을 잘라내고 조직 검사를 했지만 암일 확률이 아주 높다는 의사의 이야기였다. 다리를 자르거나 안락사를 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안락사는 절대 아니고 다리를 자른다면 세 다리로 어떻게 다닐 것인가?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아팠을까?
퇴근 후, 집에 들어오니 아내와 아들이 몹시 침통한 얼굴이다. 수술 후 정신이 없을 텐데도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내게로 다가와 몸을 비벼댄다. 왈칵 눈물이 나려고 했다.
지난 12년을 한결같이 나에게 충성을 다 했으며,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던 럭키였다.
옛날 어른들은 사람이 너무 못 되게 굴면 “개만도 못하다”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신의를 지켜야 할 대상은 참으로 많다.
말 못하는 개도 주인에게는 신의를 지키며 충성을 다하는데,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
수술 후, 10일은 나가서 운동은 안 된다고 의사는 말하였지만 아침이면 럭키는 어김없이 계단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공원을 갈 수는 없으나 뒤뜰로 데리고 나가 왔다갔다 하면서 럭키를 바라보았다. 자기 몸은 불편하지만 주인과의 약속된 시간에 어김없이 나타나 나를 기다리는 그 신의는 내가 배워야 할 것 같다.
나는 기도한다. 암이 아니기를, 아니 암이라도 다리를 잘라내지 않고 속히 회복되어 나와 함께 공원을 뛰어 주기를….
우리 가족은 아직 럭키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