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에 논보리 소곳소곳 풀냄새 풍기며 올라오고, 그보다 더 많은 독새풀이 논고랑을 넘어 논두렁을 휘감고, 키 작은 자운영이 다소곳하고도 수줍은 듯이 납작하게 꽃볼을 내밀 때가 되면 지천은 연록의 바다를 이룬다.
못자리를 위해 비워 놓은 논에는 벙벙하게 물이 괴어있고, 그 안에 흐물거리던 개구리 알에서 이제 막 깨어난 올챙이들이 그 작은 꼬리로 스무 배도 넘을 몸통을 떠받치고 잘도 헤엄을 친다. 눈을 들어 허리를 펴면 거짓말 같이 사방이 아지랑이요, 종달이 소리가 드높다.
삐비가 여물이 들면 주머니에 한주먹 소금을 넣고 집을 나선다. 쇠똥이 많은 곳에 통통한 삐비가 유난히 많다. 뽀드득 소리나게 삐비를 뽑아 발겨서 새하얀 여린 삐비살을 입가가 검붉어질 때까지 집어넣지만 항상 허심허심하다.
다 자란 논보리밭이 누룩누룩해져 가면 그 사이를 비집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개구리 사냥이 시작되고 잡힌 개구리를 힘껏 땅바닥에 내쳐서 두 다리 쭉 뻗어버린 모습에 죄책감도 없다. 성악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물며 개구리의 상체를 한쪽 발로 밟고 다리만 그대로 뽑아서 껍질을 볏겨내고, 아킬레스건을 뚫어 가져온 철사줄에 꿰뚫어 매는데 순식간이다.
2002년 12월 4일 시애틀의 씨택공항에 내렸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나온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니 왔다가 갔는지도 모르지. 겨울인데다 부슬비까지 내린다. 나만 쳐다보는 식구들 앞에서 손짓 발짓 다해가며 어렵게 공중전화를 돌리니, 한국사람 목소리다. 이제 되었구나.
30분쯤 지나서 나타난 사람은 들리는 말로는 비즈니스가 4개인 성공한(?) 재미동포 사업가 박 사장이다. 짐을 옮겨 싣고 나서 식구들이 모두 타고난 뒤에 박 사장이 차에 시동을 걸기위해 열쇠를 미니밴 키박스에 끼우는 순간, 그 열쇠뭉치에 달려있는 열쇠 숫자가 어림잡아 스무 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우습기도 했지만 초면에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요즈음 한국엔 아파트도 열쇠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아파트 열쇠와 차 열쇠 달랑 두 개 갖고 살아오다가 모든 게 다르다고는 하지만 별일도 다 있구나,
하기야 일찍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업에 뛰어든 몇몇 친구들에게서 비슷한 걸 보기는 했지만 저렇게 가을 철 메뚜기 아가미 꿰듯, 아니면 봄날 개구리 뒷다리 꿰어 걸 듯 열쇠꾸러미를 지니고 살다니!
9년이 지나면서 늘어난 열쇠 숫자가 열개가 넘는다. 언제든지 아무 차나 운전해야 하니 4개요. 흩어져 있는 가게 열쇠 3개에다, 각각 가게 안의 오피스 열쇠, 금고 열쇠, 창고 열쇠 등 9년 전의 기억이 새롭다.
‘의인막용(疑人莫用) 하고 용인막의(用人莫疑)니라.’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에 나와 있는 말씀이다. 말인즉, ‘사람을 의심하려거든 쓰지를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을 말라.’
이제 다시 열쇠를 두 개로 줄였다. 폼 나게 한국에서처럼 멋진 재킷차림은 아니지만 주머니가 한결 가볍다. 종업원을 존중하고 믿으니 그들의 얼굴이 해맑다.
나의 딸, 아들 같은 또래의 피부색이 다른 또 다른 아들 딸들이다. 올 여름, 스물한 살 미노의 아내가 6개월 된 딸을 데리고 과테말라에서 오게 되면 아홉 가족이 뒤뜰에서 파티라도 할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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