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활동하는 화가 황메이디엔은 어릴 때 뇌성마비를 앓아 팔 다리의 평형감각과 언어능력을 잃었다. 하지만 불행을 탓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미술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그의 삶이 늘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한번은 그가 불편한 몸으로 강단에 섰다.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박사님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억울하거나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나는 신이 준 내 몸을 사랑해요. 내 다리는 길고 날씬해요. 하나님과 부모님이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주고 주위에서 위로와 사랑의 격려를 많이 받아 행복합니다.”
그는 질문한 학생을 향해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보며, 갖지 않은 것은 보지 않습니다.”
이 일화는 인간의 행복은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고 가진 것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가 중요함을 가르친다. 이 세상에는 누구나 신(神)이 부여한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각자에게 주어진다.
황메이디엔은 아무 쓸모없는 몸이지만 삶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위해 생명을 불사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예술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보라고 했던가. 장애자의 신체적 결함은 능력의 상실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건강하다고 하면 신체적 외적 조건에만 한정해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진실하면서 건강한 사랑은 정신에 있는 것이다. 영혼의 아름다운 삶은 가장 작은 것에 감사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내가 존재하므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축복인가.
행복과 불행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공존(共存)한다. 인간은 누구나 희로애락(喜怒愛樂)의 삶을 살아간다. 웃을 때만 감사함을 느끼지 말고 때로는 슬프고 힘들어 울 때도 감사하자. 인간만이 사색하고 꿈을 안고 살기 때문에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삶의 보람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사고(思考)의 능력은 실로 축복받은 신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슨 일이든지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욕심이다. 하루를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살았는가, 충만한 하루였는가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주(宇宙)의 중심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존재함으로 비로소 자아(自我)의 세계가 있다.
고(故) 법정스님은 저서 ‘영혼의 모음’에서 다음과 같이 인생을 표현했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싶을 뿐이다.”
기나 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3월이다. 온 대지에 충만한 새 봄처럼 매일 매일의 삶을 감사함으로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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