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로스앤젤레스에서 거행된 펜 문학 시상식을 무사히 마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서 공항 수속을 겨우 마치고 우리 비행기가 들어온다는 로비 쪽으로 갔다. 다행히 그곳은 조금 한산했고, 밖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공항에 오면 가끔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뉴욕에 있는 라과디아 공항인데 오래전 춥고 배고팠던 대공황 시기의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어린 손녀 둘에게 먹일 빵 몇 개를 훔쳐서 뉴욕시 즉결 법정에 소환이 되었다. 할머니 사정이 워낙 딱해서 사람들은 판사가 그녀에게 관용을 베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판사는 그녀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했다. 모두 놀란 얼굴로 판사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힘든 때에 가난한 할머니가 손녀들에게 줄 빵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이 비정한 도시의 시민들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그동안 배불리 먹어온 제가 대신 벌금 10달러를 내겠습니다. 방청인 여러분들도 각자 50센트씩의 벌금을 내십시오.”
판사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자기 모자에 넣은 다음 방청석으로 모자를 돌렸다. 법정에 앉아 있다가 난데없이 함께 벌금형을 받은 방청인들은 항의는커녕 웃음 가득한 얼굴로 모두 모자에 돈을 넣었다. 판사는 그날 모인 돈 57달러 50센트 중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나머지 47달러 50센트를 그 할머니 손에 쥐어 주었다.
그 판사는 후에 세 번이나 뉴욕 시장을 지낸 이태리계의 피오렐 라과디아인데 그의 이름을 따서 공항도 라과디아로 명명했다. 지금도 뉴욕 시민들은 그 당시 일을 가끔씩 얘기하며 따뜻한 인간애로 시민들의 신뢰를 얻은 그를 아름답게 기억한다.
예정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내가 탈 비행기는 감감 무소식이다. 지금쯤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얼굴로 사람들이 웅성이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부기장인 듯한 유니폼에 단정한 모자를 쓴 사람이 나타나 “지금 스튜어디스 한 명이 안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탑승 예정된 스튜어디스가 한 명이라도 안 오면 비행기가 못 뜨기 때문에 지금 대치할 사람이 빨리 올 수 있는지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탑승을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다시 웅성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아니, 기장과 부기장이 있는데 스튜어디스 한 명 안 왔다고 비행기가 못 뜬다니 말도 안 된다”며 흥분한다. 그때 다른 미국 여자 하나가 “아니에요. 사람 수에 따라 각자하는 일이 정해져 있고 오늘처럼 공휴일에 비행기가 꽉 차면 모두가 바쁘니까요. 그리고 전에도 그런 경우를 저는 몇 번 보았어요”라고 하니 모두 조용하다.
‘내일 직장을 나가야 하니 제발 오늘 안으로만 비행기야 떠나자’라고 속을 태우다보니 이제는 비행기 승무원들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공동의 일이 된 것 같았다. 거의 40분을 기다리니 입구 쪽에서 집에서 쉬고 있다 급히 연락을 받고 왔다는 남자 승무원이 두 손을 높이 들고 ‘비행기가 뜰 수 있음’을 알린다. 사람들은 그 승무원의 출현을 마치 구세주가 나타난 듯 모두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내며 반가워했다. 여자 승무원은 어찌된 영문인지 연락이 안 되는데 자동차 트래픽에 밀려서 못 오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예기치 않은 특별한 경험의 여행으로 잠시 걱정을 했었지만 다시 깨달았다.
‘그래, 무슨 직책이라도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고 또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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