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청춘건각(靑春健脚)처럼 신나게 달리던 내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부웅 떴다. 마크 샤갈의 생일잔치 그림 속의 여인처럼 거꾸로 떴다가 135파운드의 육중한 체중을 왼쪽 무릎 슬개골에 실은 채 가늘게 ‘바삭’ 소리가 날 정도로 주차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순간적으로 느낀 것은 경상(輕傷)은 아니구나, 그래도 혼자 일어나 보려 했으나 왼쪽 다리의 무게는 천근같다. 단 한치도 움직일 수 없을 뿐 아니라 넘어지면서 몸의 균형을 잡아주듯 벌어진 다리를 모으는 동작조차 할 수 없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첫째도 두 번째도 당연이 본인의 잘못이다. 그러나 사건 발생은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일어나는 결과일 뿐이다. 즉 동기, 원인 부수적 조건에다 촉매작용까지 갖추어져서 진행형이 되는 것이다. 우리 그룹은 주 1회 정도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담소를 즐긴다. 사고가 발생하던 날도 여느 때처럼 우리 차로 함께 가는 것으로 알고 느긋한 마음으로 주차장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나 그 날은 예고도 없이 분산해서 가는 모양이다. 첫 번째 차는 바람처럼 획 떠나버렸고, 두 번째 차로 가시던 분께서 주차장에 엉거주춤 서 있는 우리 부부를 보시고 나가려던 길 되돌아오셨기에 우리 부부는 일단 탔다가 나 혼자 내렸다.
나는 제 3의 차로 오시는 분에게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 특유의 깜박깜박증 때문에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음을 알고 일단 떠나라고 신호까지 보낸 제 2의 차, 주차장을 막 돌아가고 있는 차를 향해, 언덕진 눈 속을 올라가는 토끼마냥 갑자기 뛰기 시작한 것이다. 심사숙고 하지 않은 순간적인 판단의 오류는 항상 사고발생의 원인이 된다.
노년에 흔히 있는 판단 고리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슬픈 현상, 내가 항상 옆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뛰다가 공중곡예를 연출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넘어진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떠나고 있는 제 2의 차를 향해 몸을 획 돌리며 보폭을 너무 크게 점프하듯 뛰어가는 바람에, 긴 치마폭도 부족하고 더욱 울(wool)이 되어 몸이 치마에 감기면서 일단 공중으로 붕 떴다가 맨 앞에 나온 왼쪽 슬개골이 전신의 몸무게를 받고 넘어지는 희생타를 친 것이다. 사고가 있던 당일(11월17일), 볼티모어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엑스레이 촬영 진단 결과 월요일 다시 봐서 수술여부를 결정하겠단다. 모든 절차 끝내고 집에 돌아 온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어둠속을 달리는 노안(老眼)에 길을 잘못 들어갔으나 에드거 앨런 포우의 무덤이 있는 자그마한 성당은 좋은 목표가 되어 주었다. 그 많은 수술실 중 나의 담당의가 있는 곳으로 정시에 도착, 수술 받아야 할 다리에 이니셜 사인하는 것까지 기억하고 눈을 떠 보니 회복실이다. 팔에 정맥주사 주렁주렁 매단 채 입원실로 옮겨졌다. 마취가 깨어감에 따라 아... 그 고통. 누워 있는 위치의 불편함, 진통제가 무슨 소용.
내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은 수분 공급뿐이다. 그러나 물은 목을 통과하지 않고, 얼음 조각을 입안에 넣어 회복기의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다. 눈을 떴다 감았다 얼음만 찾는 나에게 옆에서 24시간을 지키며 스푼으로 얼음조각을 입에 넣어주던 남편,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말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나의 입술은 새카맣게 타들어가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드디어 퇴원하는 날, 집에 와서 남편의 고생은 계속된다. 브레이스(Brace)를 하고 다리를 쭉 뻗은 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내려갈 때 올라올 때 남편은 나의 발끝과 발뒤꿈치를 잡고 유리그릇 다루듯 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한번 잠들면 숙면을 취하기에 깨울 수가 없다.
이번 사고로 연말 모든 행사는 무산되고 말았지만 한편으로 아파 누워 있는 시간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다른 곳 상처 하나 없이 무릎 뼈만 깨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며 이번 불의의 사고는 나의 인간적 성장이 요원(遼遠)하다는 암시로 받아들이고 싶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