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의 앵그르(1780~1867)는 그의 생애 마지막 그림 중 하나인 ‘터키 목욕탕(The Turkish Bath, 사진)’을 그렸다. 격정적이고 뜨거운 동 시대 화가인 들라크로아에 비해 차가운 고전적 화풍으로 일관했던 그는 당대의 여성을 엄격하고 고결한 인상과 극 사실적인 화려한 의상으로 표현했다.
이성적이고 억압된 그의 화풍의 이면에 그의 내면이 꿈꾸던 풍요롭고 관능적인 여성들의 누드를 이국풍의 주제를 통해 마음껏 표출한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일생 누드를 그리며 마침내 정직하고 자유로워진 노 화가의 인간적인 백일몽의 표현인 이 그림이 인류에게 참 멋진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 이사가 살게 된 나의 집 주인은 베트남 여성인데 한국 사우나를 좋아하여 여러 사우나를 다니며 즐기는 데 여러 명의 외국인 친구들을 사우나에 초대하곤 한다. 자메이카에서 온 케런, 베네수엘라에서 온 요하나와 몇 명의 백인 여성이 정기적으로 사우나에서 만나곤 한다. 요하나는 거의 매일 사우나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들었다.
세 들어 처음 만나 느끼는 어색함을 풀 겸 나도 그녀들을 사우나에서 만났다. 여자들의 우정은 내밀한 데가 있는데 특히 사우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남다르게 친밀하다.
사우나에 가면 거의 반 이상이 외국 여성들인데 나도 나의 오랜 외국 여성 친구들을 사우나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모두 하도 좋아해서 오랜 시간의 우정을 새로이 하는 데 좋은, 멋진 선물인 것 같다.
한국 연속방송극을 좋아한다는 중국 여성에게 왜 그러한가 하고 물으니 감정의 표현을 격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다고 했다. 사우나에서도 모든 게 대단히 감성적인 경험으로 느껴진다.
철철 넘치는 물, 숨이 막히는 열기, 퍼져 누워 잠들 수 있는 온돌, 뜨거운 숯불 사우나 … 사우나에서는 모든 게 데카당트하다. 요란한 한국의 인기 가요와 게임쇼가 방마다 보이고 마음껏 물을 퍼 쓰는 풍요의 장소에서 삶의 애환이 잠시 잊혀 지고 씻겨 진다.
인간의 모습은 무엇엔가 집중하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데 스케치북을 들고 들어가 그릴 수는 없으니 열심히 포즈들을 바라본다. 까만 긴 머리를 감고 있는 소녀의 모습, 하얀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모습을 바라보며 우아한 몸의 선의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젊은 아가씨들의 몸매와 할머니의 몸매를 감상하기도 하고, 외국 여성들의 몸매의 아름다움에 놀라기도 한다. 엄청나게 뚱뚱한 흑인 여성이 지나가기도 하고 거울 앞에선 젊은 흑인 여성들은 튼튼한 다리를 딱 벌리고 서서 도대체 몇 시간 까만 머리를 손질 하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여자들이 얼마나 이상한 행위들을 열심히 하는 지 나로서는 모든 장면들이 특이하고 아름답고 재미있다.
특히 스무 명 정도가 쫙 누워서 때를 밀리고 있는 장면이 장관이다. 그토록 격렬한 광경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플래스틱 분홍색 바가지와 여러 가지 플래스틱 용기들을 바라보며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것을 바꾸어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촌스럽고 비위생적이고 모르는 사람들과 발가벗고 함께 앉아있는 야만적(?)인 시간의 험에 외국인들이 매료되는 것이라면 한국 연속 방송극이 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듯이 이 특이한 목욕 문화 또한 가장 적나라하기에 신선하고 무엇보다도 친밀하기에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듯하다.
나로서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좋아하듯이 어렸을 적 엄마와 고모들과 함께 목욕탕에 갔던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키기에 사우나가 좋고, 놀랍게도 사우나를 하고 나면 얼굴빛에 생기가 돌기도 하니까 좋아한다. 추운 겨울, 몸과 마음을 녹이기도 하고 눈앞에 보이는 육체의 장관을 바라보기가 즐거워 가끔 사우나에서 친구들 만나는 약속을 하곤 한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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