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비디오 가게는 미주 한인 사회에서 가장 짭짤한 스몰 비즈니스의 하나였다. 큰돈이나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고 재고도 없이 그 날 그 날 현찰이 들어오는 이 장사만큼 힘들이지 않고 높은 수입을 올리는 업종도 없었다. 80년대 90년대까지 비디오 플레이어가 널리 보급되고 재미있는 한국 연속극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비디오 폐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밤새 한국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사람들이 생기자 비디오 대여 업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국 비디오 가게도 비슷했다. 한인들처럼 수십 개씩 빌려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한두 개를 빌려가도 제 때 반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 때 물리는 연체료가 비디오 가게의 주 수입원이었다. 동네 어귀마다 미 최대 비디오 체인인 ‘블럭버스터’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비디오 가게의 배를 불려 주던 이 연체료가 업종 몰락의 신호였음을 안 사람은 없었다. 1997년 북가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랠프 헤이스팅스는 어느 날 ‘아폴로 13’ 비디오를 빌렸다 늦게 돌려주는 바람에 비싼 수수료를 물게 됐다. 이에 화가 난 그는 동료들과 우편으로 DVD를 배달해주는 ‘넷플릭스’라는 회사를 창립한다.
매달 일정액을 내면 연체료 없이 무제한 DVD를 빌려 볼 수 있는 이 회사 방침은 비싼 연체료에 지친 수많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됐고 가입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비디오 가게의 수입은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던 넷플릭스와 블럭버스터의 싸움은 정말 다윗과 골리앗처럼 블럭버스터의 몰락으로 끝났다. 한 번 넷플릭스에 맛을 들인 미국인들은 비디오 가게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비디오 가게를 무너뜨린 넷플릭스는 이제 케이블 TV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분기 동안 케이블과 위성 TV 가입자 수는 사상 처음 연속 줄어들었지만 넷플릭스 가입자는 2007년 500만에서 올해 1,400만으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 이유의 하나는 넷플릭스가 매달 비싼 돈을 주고 원하는 영화가 나올 때를 기다려야 하는 케이블이나 위성 TV와는 달리 비디오 대여 수수료만 내면 일반 TV로 수 만 개의 영화를 즉석에서 골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물론 하이스피드 인터넷 커넥션이 있어야 하고 이를 스트리밍 해줄 장비가 있어야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블루레이 플레이어에는 이 스트리밍 장치가 내장돼 있다.
영화를 보다 중단시킬 수도 있고 뒤로 돌려 볼 수도 있으며 패스트 포워드도 가능하다. 화질도 영화에 따라서는 HD 수준으로 높다.
대형 HD TV로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거저 마음대로 골라 볼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굳이 비싼 돈 주고 영화관까지 가는 사람 수도 줄어들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거기 적응하는 사람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넷플릭스는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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