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중간선거에도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은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도 마음에 안 들고, 공화당도 마음에 안 들어서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은 케이스들이다.
다음은 중간선거라는 데서 생긴 일종의 태만. “대통령 선거도 아닌데 나 하나쯤 투표 안한들 무슨 대수랴” 하는 안일함이다. 그 다음 특히 한인 유권자들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서 …” 투표를 안했다는 케이스들도 많다. “집으로 우송된 투표 책자를 보니 책이 한권인데,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면서 그냥 찍느니 차라리 가만있는 게 나을 것 같더라”는 말이다.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도 이민1세들에게 투표는 여전히 만만한 일이 아니다. 주지사나 연방상원 선거 정도는 뉴스로 접하지만 주정부의 여러 다른 선출직들, 각급 법원의 판사들은 이름도 금시초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시민으로서 투표를 하고 안하고는 이제 개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불과 반백년 전만해도 미국에서 모든 시민들에게 투표권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평등을 이념으로 건국된 나라가 미국이지만 오랜 세월 평등은 ‘그들’만의 평등이었다. ‘그들’이란 백인 남성들. 여성과 유색인종은 철저하게 배제되었었다.
우선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1920년부터이다. “집에서 살림하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왜 필요 하냐” “정치 같은 더러운 데 개입하면 여성의 아름다움이 손상된다”는 등 갖가지 이유로 여성의 참정권은 거부당했다. 여권 운동가들의 피나는 투쟁으로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되면서 여성들은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백인 여성들은 “집에서 일하는 흑인남성도 투표권이 있는데 내가 투표권을 못 갖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개했지만 사실을 짚어보면 그게 아니다. 흑인남성의 투표권은 1870년 제정된 수정헌법 제15조로 보장이 되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흑인남성도 시민으로 인정이 된 결과였다.
하지만 남부의 백인들이 보니 그 연방법은 문제가 심각했다. 당시 남부 주들은 백인과 흑인 인구가 엇비슷하거나 때로 흑인이 더 많았다. 흑인이 투표권을 갖고 ‘시민 행세’를 하면 흑인 세상이 되고 말 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KKK 비밀단원들이었다. 흑인이 투표소로 나가지 못하도록 협박과 린치, 살인을 불사했다.
아울러 남부의 주들은 주 헌법을 개정해 법적으로 흑인의 참정권을 차단했다.
일정 액수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자, 투표세를 납부한 자, 글을 읽고 쓰는 자 등의 규정을 만들었다. 노예에서 갓 풀려난 흑인들로서는 갖출 수 없는 요건들이었다.
그런가하면 ‘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할 좋은 성품’을 자격요건으로 명시한 주도 있었다. 검사관의 주관에 따라 판단하는 데 일단 흑인이면 통과되지 않는 것이었다. 텍사스 같은 주는 아예 ‘백인 예비선거’ 규정을 만들어 유색 인종은 예비선거 장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1960년대 흑인민권 운동 이후에야 이 모든 차별은 사라졌다. 투표권은 가볍게 볼 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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