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죄는 인간이 갖고 있는 고칠 수 없는 지병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죄란 벗어날 수 없는 속성이며 끈질긴 인간의 굴레다.
탐험가로 유명한 버드 제독이 대원들을 이끌고 남극에 도착했다. 거기서 반년 이상을 지내는데 견디기 힘든 고독한 생활이었다. 제독이 대원들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지금 무엇을 가장 그리워하는가?” 대원들이 대답했다. “따끈따끈한 밥이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이 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먹고 입는 것, 그리고 가족과의 사랑과 친구의 우정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한 대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게 지금 그리운 건 유혹입니다.” 그 말을 듣고 다들 웃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주는 진실성에 압도되었다는 일화이다.
그 말의 참뜻은 무엇인가. 죄가 그립다는 말이다. 죄를 짓고 싶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증오하고 멀리하려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죄에 빠지도록 인도하는 유혹을 사랑한다. 목사나 신부나 스님처럼 우리가 생각할 때는 유혹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분들이 어이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범인과 다를 바 없다. 이름만 대면 아는 성직자들이 하룻밤에 추락하는 놀라운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유혹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브를 유혹하는 유혹자가 뱀인 것은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유혹의 처음은 소리 소문 없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혹으로 가는 길을 막고 유혹에 떨어지는 손이나 발을 자르고 유혹을 보는 눈을 빼라지만 정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인간은 결단보다 변명을 선택할 뿐이다.
키플린이 쓴 시에 ‘죄’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추운 겨울 밤 노크소리가 들린다./ ‘밖에 누가 왔소?’/ ‘나는 보잘 것 없는 여자랍니다.’/ 약한 여자의 음성이었다./ ‘그런데 누구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사랑을 그리워하는 여자라니까요.’/ ‘이름이 뭡니까?’/ ‘죄라고 부른답니다.’/ ‘들어오시오!’라고 나는 말해 버렸다./ 그 순간 내 방은 지옥으로 가득 찼다.”
섬뜩한 시지만 우리는 이런 일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렇게 내 안에 들어 온 유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극복은 무엇인가. 다른 집중을 통해 유혹의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다른 힘을 향해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희랍신화에 보면 뱃사람이 항해할 때 아름다운 요정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선원들은 그 노랫소리에 넋을 잃고 헤매다가 그만 암초에 부딪쳐 죽고 말았다. 이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선원들은 뱃머리에 오페우스 신상을 매달았다. 유혹하는 요정의 노래가 시작되면 음악의 신인 오페우스도 노래를 시작했다. 그 오페우스가 부르는 노래가 더 크고 우렁차고 아름답기 때문에 선원들은 요정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길 수 있었다.
요정의 노래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요정의 노래보다 더 크고 우렁찬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극복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유혹 앞에 서 있는가. 무엇이 그 유혹보다 더 강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오늘도 천국 가는 버스가 왔다. 그러나 버스는 매일 아침 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타지 않았다. 천국이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인 줄은 알지만 이곳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에 “내일은 꼭 타야지.” 다짐만 하고 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터 그 버스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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