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은 스스로 세자 자리를 버렸는가. 조선조 500년 역사를 조명할 때마다 끊임없이 던져지는 화두다.
양녕대군 이제(李?)는 태종과 그 정비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1살 때인 태종4년에 세자로 책봉된 그는 커다란 변고가 없는 한 태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제 4대 왕으로 즉위하는 것은 정해진 운명같이 보였다.
그러나 양녕대군의 대권가도에 변고가 생긴다. 폐세자가 되어 쫓겨나고 결국은 동생 충녕대군이 즉위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관련해 던져지는 질문이 양녕대군은 스스로 세자 자리를 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문학작품들은 ‘그렇다’고 묘사하고 있다.
군주로서 동생이 지닌 천재성을 간파했다. 그리고 부왕의 마음이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있다. 그래서 대권을 양보하기위해 일부러 미친 짓을 골라 했다는 식의 묘사다. 정사의 기록은 정반대다.
학문에 뜻이 없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어리다. 거기다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문제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태종은 이런 세자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폐세자를 하기에 이르렀다는 게 정사기록의 골자다.
이런 양녕이 당시로는 꽤나 장수한 끝에 생을 마친다. 아우인 세종, 조카 문종과 손자격인 단종을 거쳐 세조 8년 70세가 다 돼 숨진다.
그가 이처럼 제명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어진 동생 세종 덕이다. 그의 비행은 세자시절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탄핵당한 게 수 십 차례다. 그럴 때마다 감싸고 돈 게 세종이었다.
왕권의 지근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왕이 못됐다. 이런 비운의 왕자들의 삶은 그러나 거의 다 비참했다. 그 케이스의 하나가 제안대군이다. 예종의 장자로 태어나 바로 세자가 됐다. 그런 그가 불과 3살 때 아버지 예종은 갑자기 죽는다.
대권은 엉뚱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의 사촌형 자을산군(훗날 성종)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비운의 왕세자 제안대군에 대한 세평은 사람이 좀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하는 짓이 해괴하다. 그리고 어리석은 소리만 했다. 그래서 나온 평이다.
다른 해석도 나온다. 똑똑한척했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리석음을 가장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미친 듯 살아가기는 성종의 친형 월산대군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술과 여자에 파묻혀 지낸 것이다.
후대로 내려가면 왕의 형에게 뒤 따른 것은 죽음뿐이었다. 광해군의 형 임해군의 경우처럼.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어떤 운명을 맞을까. 김정일에서 3남 정은으로 북한의 3대 권력세습구도가 기정사실화되면서 던져지는 질문이다. 김정은은 아버지 못지않게 성격이 포악하다고 한다. 김정남 암살기도 등 보도로 보아 배다른 형인 정남과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이런 정황에서 대권은 동생차지가 확실시 된다. 김정남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그 ‘와일드 게스’의 하나가 대한민국으로의 망명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말이다.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올까. 하여튼 꽤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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