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이번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으로 제법 살아나는 듯했던 경제는 올해 상반기 주요 부양책이 시한을 다한 이후 민간부문에서 기대했던만큼 자생력을 얻지 못해 회복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당국은 시중에 자금을 많이 푸는 금융완화 정책으로 전환하는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 다시 3천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기에 이르렀지만 당장 시행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제대로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다시 추락하는 미 경기 = 미국의 경기는 올해 봄부터 눈에 띄게 약화됐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6%(전기대비 연율, 잠정치)로 하향조정되면서 이전에 나온 속보치 2.4%만 보고 나름대로 견조한 상승세로 평가하던 이코노미스트들을 당황하게 했다.
7월에도 개인소비지출이 전월대비 0.2% 증가했지만 개인소득은 정체됐고 8월 들어서도 소비지수 등이 이전만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가 최근 실물경제학자 7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의 GDP는 현 3분기에 작년 동기 대비 1.8%, 4분기에는 2.1% 각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8월 조사 때의 2.4%와 2.5%에 비해 떨어진 것이다.
내년 전망치도 7월 조사 때 2.8%, 8월에 2.7%이던 것이 9월에 2.4%로 더 떨어졌다.
조사에 응한 RBS의 미셸 지라르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실질적인 위험은 평균 이하의 성장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더블딥(경기 회복후 다시 침체) 가능성을 크게 보는 전문가들도 올들어 많아졌다.
8월의 경우 25%, 9월에는 이보다 조금 낮아져 20%가량이 더블딥에 대해 우려하는 실정이다.
대표적 경기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지난 8일 회견에서 "최근 미국 경제 지표들이 예상보다 좋게 나왔지만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다"면서 "더블딥 가능성이 40%는 된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도 미국 경기 전망을 앞다퉈 하향조정하고 있다.
UBS가 3분기 성장 전망을 기존 3%에서 1.5%로 낮췄고 JP모건 역시 2.5%이던 것을 1.5%로 하향조정했다.
경기부진의 대표적인 지표는 고용사정과 주택시장이다.
8월 실업률은 9.6%로 전월(9.5%)보다 상승했으며 비농가취업자수도 3개월 연속 감소했다.
민간부문 고용 역시 8개월 연속 늘어났지만 증가폭은 둔화되는 추세다.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수(4주 이동평균)가 8월에 연중 최고 수준인 50만명까지 상승하다가 9월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등락폭이 심해 언제 또 취약한 모습을 보일지 알 수 없다.
일부에서는 실업률이 내년 상반기에 다시 10% 수준까지 커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한다.
주택시장 역시 판매가 감소하면서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7월 기존주택판매는 주택구입자에 대한 세제혜택 종료 등의 영향으로 전월대비 27.2% 감소,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신규주택 판매도 전월대비 12.4% 감소, 1963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았다.
주택구입을 위한 모기지 신청건수가 8월에 1.5% 증가하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주택시장이 바닥에서 벗어나는데 상당기간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용이 회복되지 않으면서 자금에 여유가 없는 국민이 주택구입을 꺼리고, 이로 인해 주택가격은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소비지출 등에 악영향을 미쳐 다시 고용증대에 걸림돌이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JP 모건의 경우 최근 모기지금리 하락에도 주택 신규수요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면서 주택시장이 당분간 안 좋을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는 안정돼 있지만 경기회복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시장도 좋지 않아 8월 휴가철에 경기둔화 우려가 확산하면서 다우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해 8월26일에는 10,000선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증시 불안 정도를 반영하는 변동성 지수인 VIX(CBOE)도 경제전망의 불확실성 증가 등을 반영, 7월 말 23.5이던 것이 8월 말에는 26.1 수준으로 상승했다.
◇새 경기부양책 성공할 수 있을까 = 지난해 하반기 경기가 회복된다는 판단 하에 출구전략을 신중하게 모색하던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올해 2분기 이후 경기가 예상외로 지지부진하자 8월부터 다시 양적 완화정책으로 기조를 바꿨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취한 비상조치들을 원상회복하려다가 다시 위기에 빠진 경제를 보고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연준이 가진 채권과 여타 파생상품의 회수금을 활용해 장기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유동성을 풍부하게 공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단기 국채금리는 하락세를 지속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지만 주식시장의 경우 연준도 경기를 안 좋게 보고 있다는 인식을 줘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시중 유동성도 생각만큼 크게 증가하지 않아 경기부양효과도 미미하다는 평가다.
연준의 힘만으로 안 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3천500억 달러 규모의 추가부양책을 내놓았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초 시행한 7천870억달러 규모 부양책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담을 느낀 대통령의 승부수로 보인다.
앞으로 2년간 기업 설비투자에 대해 총 2천억달러의 세금을 깎아주고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서도 10년간 총 1천억 달러 세금을 감면해주기로 했다.
6년간 500억달러 이상을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투자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백악관 측은 이 부양책이 경기회복 속도를 높이기 위한 ‘맞춤형’ 부양책이라고 자평했지만 총 규모가 만만치 않아 벌써 야당의 반발을 불러오는 등 시행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넬 의원은 성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이미 실패로 판명된 이상 추가 경기부양책에 또다시 국민세금을 쏟아 부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하원 원내대표 존 베이너 의원 역시 "더 많은 부양책과 세금인상, 재정지출은 필요없다"면서 부양책이 지출남용이라고 공격했다.
경제학자들의 부양책 필요 주장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하버드대의 니알 퍼거슨 교수는 부양책을 촉구한 폴 크루그먼과 브래드포드 들롱 교수를 겨냥, "이들의 경제적 가정은 이른바 존 케인스 모델의 ‘결함이 있는 변형들’에 토대를 둔 것"이라면서 "부채가 과다한 경제에서 재정에 의한 부양책의 역할에 대해 잘못된 케인스 모델들을 염두에 두고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주종국 김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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