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기상이변
‘식탁 인플레’ 위협
세계 곡물시장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부족에 처하면서 식탁에도 인플레이션 공포가 드리워지고 있다. 현재 세계 곡물시장은 이달 초 러시아의 밀수출 전면 금지선언 이후 밀값이 한달 새 60%이상 껑충 뛴 것을 기점으로 옥수수와 대두 등 다른 곡물 가격도 동반상승하고 있다. 또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홍수로 쌀과 면화, 팜오일 생산도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1997년이래 최대 규모인 이번 라니냐 현상은 올겨울 남반구 곡창지대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여 세계 식량 전문가들은 세계경제가 ‘더블 딥의 망령’뿐 아니라 ‘식탁 인플레이션’공포까지 엄습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 곡물시장 상황은
19일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9월 인도분 밀 선물가격은 부쉘당 25.25센트(3.85%) 오른 6.8125달러로 이틀째 강세를 이어갔다. 옥수수는 4.25센트(1.02%) 하락한 4.1425달러를 기록했다. 11월 만기 대두는 18.4센트(1.79%) 빠진 10.12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6월 밀 평균가격(4.50달러)에 비하면 한달새 70% 가까이 오른 셈이다.
밀뿐만 아니라 옥수수와 대두의 가격도 일제히 올랐는데 이 역시 한달새 10% 이상 상승한 것으로 가격 오름세는 곡물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발 곡물 품귀현상이 지난 2007~2008년의 식량파동 수준에 버금가는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미 스위스의 대형 식품 소매업체들이 밀을 원료로 하는 제품가격의 인상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등 농작물(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파장이 지구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조만간 소비자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왜 오르나
세계 3위 곡물 수출국가인 러시아가 130년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밀을 비롯, 보리, 호밀, 옥수수 등 곡물 수출을 이 달 15일부터 전면 금지시키면서 세계 곡물시장의 파동이 시작됐다. 또 17일엔 우크라이나가 올해 말까지 곡물 수출을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고 발표하면서 세계 곡물시장은 더 거세게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외에도 카자흐스탄도 밀 생산이 최고 20% 이상 줄어들면서 올 6월 이후 국제 밀 가격은 50% 이상 급등했으며 보리 가격도 2배 이상 껑충 뛰어 올랐다.
또 중국에서는 남부지역에 내린 심각한 폭우와 홍수 피해로 쌀과 면화 수확량이 지역별로 적게는 3~5%, 많게는 20~30%가량 감소하면서 농산물 가격 폭등에 영향을 미쳤다.
또 전문가들은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식량을 무기화하고 있는데다 투기세력이 곡물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점도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농산물 통제 무역회사를 설립한 후 전격적으로 밀수출 금지를 발표, 국제 가격 폭등을 촉발시켜 식량을 무기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풀린 유동자금이 상품 펀드와 헤지펀드 등에 유입되면서 농산물 가격의 고공행진을 부추기는 것도 주요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내년 되면 나아질까
불행히도 올해 말과 내년 초 수확기를 맞는 남반구 밀 곡창지대 역시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칠레 인근 태평양에서 발생한 대형 라니냐(해수 장기 저온 현상)가 연말에 활동이 가장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남반구 주요 경작지에 대규모 가뭄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남미의 곡물 수출 대국 아르헨티나의 밀과 옥수수 콩 생산에 비상이 걸렸고 호주의 밀 농가들도 근심이 깊어졌다.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주요 커피재배 지역에는 홍수가 발생해 내년 커피 작황 역시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인마켓도 곡물가격 대란 올까
20일 현재까지 한인 마켓들의 곡물 가격은 큰 변동은 없는 상황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꾸준히 가격이 상승해 백미부터 현미, 찹쌀, 보리, 팥, 검은 콩, 녹두 등 잡곡류까지 올 들어 곡물 값이 최고 50%까지 오른 상황이다. 그러나 이달 들어 한인마켓들의 곡물가격은 이렇다할 추가 인상은 없었다.
한인 마켓 관계자들은 “소비자 가격까지 그 여파가 미치려면 한 두달은 더 있어야 한다”며 “게다가 미국 내 밀 작황은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이어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인 마켓들은 밀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산 밀 관련 제품들의 가격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과자, 빵, 라면 등 한인들이 즐겨 찾는 한국산 제품 가격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상승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켓 판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라면의 경우, 가격 상승이 확실시 돼 한인 마켓들은 이를 입도선매하려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온마켓 마틴 김 매니저는 “밀값이 오를게 확실시 돼 한국 업체 역시 선뜻 입도선매에 응하려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라면의 경우 가격저항이 큰 품목이어서 조금만 가격이 올라도 마켓 매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향후 곡물시장 어떻게 되나
전문가들은 글로벌 곡물파동이 2년만에 되풀이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2년 전 식량파동 때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밀 재고량이 3,000만톤으로 2008년에 비해 800만톤이 더 늘어나 충격을 완화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한국정부 역시 곡물가격 파동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17일 한국 농림식품부는 자료배포를 통해 “러시아의 곡물 수출중단 발표에 이어 일부 국가가 수출제한에 나설 경우 향후 밀, 콩, 옥수수 등 주요 국제곡물의 수출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현 상황은 2007~2008년도와는 수급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급등 현상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현 기자>
최악 가뭄 러시아, 수출중단 촉발
식량 무기화 조짐에 투기세력 가세
올들어 50%까지 오른 한인마켓
한국산 오르면 라면 등 인상 불가피
“곡물파동 2년만에 재연”우려 속
“그 때와 상황 달라”낙관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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