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 춤에서 독특한 소품 중의 하나는 긴 소매 자락, 장삼이다. 대표적 전통 무용인 승무를 예로 들면 양팔을 서서히 들어 올릴 때 하늘을 향하여 길게 솟구치는 장삼자락의 유연한 선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장삼 없이 맨손으로 승무를 춘다고 상상해보자. 싱겁고 허전할 것 같다. 소매를 얼기설기 하며 공간으로 뿌리칠 때의 역동적 춤사위 또한 장삼이 없다면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긴 소매가 춤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중국의 전통 춤도 장삼, 즉 긴 소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온 말이 긴 소매가 춤을 잘 춘다는 말이다. 바로 장수선무(長袖善舞)이다. 춤출 때 긴 소매가 유리하듯 어떤 일을 할 때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유리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의 ‘긴 소매’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마바 행정부 출범 후 엇나가고 꼬이기만 하던 미·북 관계가 클린턴의 ‘장삼 자락’에 돌파구를 찾는 듯하다.
4일 클린턴의 방북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만해도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두 여기자의 석방을 위해 클린턴이 민간인 자격으로 갔다는 것, 전직 대통령이 직접 나섰을 때는 모종의 사전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는 정도가 추측 가능할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클린턴이 평양에 발을 딛자 북한의 환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클린턴이) 김정일을 만날 수 있을까?”하던 일각의 우려를 비웃듯 김정일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를 맞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유나 리, 로라 링 두 여기자에 대한 특사를 명령, 지난 4개월간 북한 땅에 묶여있던 두 여기자는 클린턴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청개구리처럼 엇나가기만 하던 북한이 왜 이렇게 태도를 바꾸었을까. 북한이 오바마 새 행정부로부터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해석은 전부터 있어왔다. 취재 중이던 두 여기자를 체포해 12년 강제노동 형까지 선고하며 가혹하게 처벌한 것, 장단거리 미사일·인공위성을 연이어 쏘아대고 핵 개발 프로그램을 재개하는 등 엇박자로 나간 것은 ‘관심 끌기’ 목적이라는 분석이었다.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을 끌고 싶으면 괜히 못된 짓을 하듯, 미국 앞에서 북한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지 않는 미국정부는 누군가 특사를 보내 관심 표명할 방안을 강구해 왔었다.
누구를 특사로 보내느냐에 대해서는 그간 논의가 많았다. 북한과 가장 대화가 잘 될 만한 인물로 알 고어 전 부통령,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거론되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북한이 돌출행동을 계속하자, 이들 보다는 급이 높은 인물, 스타 파워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그 최적임자로 클린턴이 꼽힌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같은 거물이 나섬으로써 북한은 체면 유지하며 미국에 선심을 베푼 모양새가 되었고 미국 역시 여기자들 석방을 성공시키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잡았으니 윈-윈이 된 셈이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의 미·북간 해빙무드, 전직 대통령이라는 위치, 그리고 현 국무장관의 남편이라는 사실 등이 클린턴의 ‘긴 소매 자락’으로 이번에 힘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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