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듯한 ‘철학자’들은 사실은 위험한 인물이다. 역사를 뒤흔든 대사건 뒤에는 이들이 생각해낸 사상이 깔려 있다. 미국을 탄생시킨 독립 전쟁의 배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로크의 인간관과 정부관, 그리고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비전이 있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은 플라톤-루소의 사상을 현실로 옮겨 놓으려는 시도였다.
철학자들, 특히 대 철학자들은 한 가지 원리로 세상을 이해하는 해법을 준다. 프로이드는 성욕, 마르크스는 물욕을 인간과 인간이 만드는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로 봤다. 이 키로 자물쇠를 열면 가려져 있던 세계의 온갖 비밀이 드러난다. 생각하는 인간에게 이보다 황홀한 유혹은 없다.
문제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데 있다. 세계는 한 가지 열쇠로 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보물 창고다. 무리한 해석은 잘못된 결론을, 잘못된 결론은 현실적 재앙을 초래한다. 유토피아를 실현해 보려다 공산주의가 저지른 비극은 새삼 다시 논할 필요가 없다.
이런 ‘한 개의 비전’(monism)의 오류를 가장 통렬하게 비판한 20세기 철학자로 이사야 벌린을 빼놓을 수 없다. 라트비아 출신 유대인으로 어려서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제2차 대전 때는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정보 영사로 일했다. 이 때 올린 보고서가 너무 마음에 든 윈스턴 처칠이 “이 사람을 꼭 한번 수상 관저로 초청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부하들이 작곡가 어빙 벌린을 데려오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엉뚱한 사람을 모셔온 적도 있다.
그러나 그가 이름을 날린 것은 스파이로서가 아니라 오랜 교수 생활을 하며 쓴 숱한 철학적 에세이 덕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에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것이 있다. 그리스 시인 아킬로쿠스의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는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이 에세이에서 그는 사상가를 고슴도치와 여우로 나눈다. 단테, 플라톤, 파스칼, 헤겔, 니체, 입센은 고슴도치, 셰익스피어와 아리스토텔레스, 헤로도투스, 몽테뉴, 에라스무스, 괴테, 발작은 여우다.
그가 여기서 집중적으로 다룬 인물은 톨스토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여우 기질을 지녔으면서도 고슴도치를 지향한다.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한 가지 비전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그것이 그가 온 세상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말년에 혼자 집을 나가 떠돌다 객사한 이유다.
일원론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궁극적으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자유를 최고 가치로 두면 평등은 희생되기 마련이다. 모든 인간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할 수 없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믿는 가치가 유일하며 우월한 것이라고 우길 때 사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
노무현의 죽음은 한국 사회가 서로 자기만이 옳다고 믿는 두 진영으로 얼마나 깊게 갈라져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오는 6일은 지난 10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벌린이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만이라도 서로 싸울 생각은 그만 하고 ‘고슴도치와 여우’를 읽으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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