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이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유학길에 오른 뒤 20년 만에 이루어진 한국 나들이. 유학생활과 이민생활 속에서 조금은 먼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던 나의 고국, 2주간의 한국 나들이는 완벽했다.
이번 고국방문은 공연 초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바인시와 자매 결연을 맺은 서울 노원구 구청에서 박 트리오를 초청한 것이다. 노원구 공연에 앞서 우리는 전북 음악협회 주관으로 군산과 익산에서 공연무대에 올랐다. 어린 시절의 향수가 남아있는 그곳에서 벚꽃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연을 선보였고, 음악을 느끼는 관객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얼리니스트인 형 박윤재와 첼리스트인 형수 박수정 그리고 피아노 반주를 맡은 나의 아내 박성연과 박 트리오의 피아니스트인 나까지… 수많은 콘서트를 통해 음악을 선보였지만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은 달랐다. 1997년 박 트리오가 결성된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갖는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노원문화 예술회관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이 우리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설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700석 강당을 가득 메운 귀빈과 노원구 주민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는 무대에 올랐고, 한곡 한곡 연주 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박수갈채에 우리는 가슴 벅찼다.
20년만의 고국방문에 우리를 반겨 주는 분들도 많았다. CTS 기독교 TV의 ‘내가 매일 기쁘게’에 출연해 우리 가족의 음악과 신앙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전주 KBS의 ‘휴’라는 클래식 프로그램을 통해 박 트리오의 음악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마침 어바인의 강석희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의 출판 기념회가 있어서 그 곳에 가서 축하 연주를 한 것도 뜻 깊었다.
관중들의 우렁찬 박수, 언론의 따뜻한 찬사, 가족의 사랑과 더불어 도움 주는 분들의 손길까지… 20년만의 고국방문을 통해 나는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다시 삶의 현장인 남가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는 가끔 한국 학생들을 떠올리곤 했다. 레슨을 부탁해 만났던 몇몇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탁월한 연주 실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내가 그들에게 감동을 받은 것은 단지 음악만이 아니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특별했다. 레슨을 청하는 학부형과 학생들의 태도에서, 미국 땅에서는 느낄 수 없던 선생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의 겸손한 자세는 나로 하여금 내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고 싶게 만들었다. 시간이 부족해 많은 걸 가르치지는 못했지만, 선생의 말에 순종하며 작은 것 하나라도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를 보면서, 나는 한국적인 그 무엇에 매료되었다.
“스승은 제자를 처음 만나는 순간 씨앗 하나를 마음에 심어준다고 합니다. 메마른 날엔 단비를 뿌려주는 구름이 되고 비바람이 심한 날엔 조금이라도 상처가 될까 옷깃 젖는 것도 모른 채 우산이 되어주시는 분. 그 소중한 보살핌 속에 어느새 제게 싹이 텄답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스승의 날’ 감사 편지의 일부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을 보내며 나를 만들어준 스승님들을 가슴 속에 한 분씩 떠올려 본다. 그때 나는 어떤 제자였는가?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따랐는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스승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앤드루 박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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