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물결이 한국을 뒤덮고 있다. LA를 비롯한 재미한인사회 곳곳에도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못지않게 강한 보수와 진보의 성향을 표출하며 대립했던 이념의 차이를 잠시 접고 불행한 시대를 살다 불행하게 간 고국의 지도자에게 한 마음으로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메모리얼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22일 저녁 무렵 전해진 노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 소식은 한인사회를 충격과 비탄 속으로 몰아넣었다. 포괄적 뇌물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발생한 비보를 접했을 때, 놀람과 슬픔 못지않게 우리를 엄습한 것은 한국정치의 비극적 실상을 또 한 번 목격하는 참담함이었다. 벌써 수 십 년째 정권교체 때마다 전직 대통령들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고 구속되는 어두운 모습을 계속 지켜보아야 했다. 뉴욕시라큐스대학의 정치학자 한종우 교수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년 임기를 마치기 무섭게 변고가 생기는 “한국의 대통령은 시한부 암환자”라며 현실과 너무 다른 제도 속에서 자해를 되풀이하는 위선적인 한국정치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힘을 합해 전진을 해도 쉽지 않은 치열한 국제경쟁의 와중에서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고국의 정치행태를 걱정하는 한 한인의 반응은 한인사회가 공유하는 안타까움을 대변해준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자신으로 하여금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한국의 후진적 정치문화를 바꾸는 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앞으로 한국의 정치·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부를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추모열기 한편으로 갈등의 양상이 보이고 있다. ‘정치적 타살’이라는 비난과 ‘권력형 비리’라는 반박이 대립한다. “검찰에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요구와 “국민적 비극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도 장례식이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맞설 태세다.
격한 감정의 대립은 빈소 주변에서도 드러났다. 일부 노사모 회원들의 격렬한 제지로 국무총리 등 여권인사들의 조문이 거부되고 전·현직 대통령들의 조화가 훼손당했다. 추모인파가 시위대로 변할까 긴장한 당국도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는 등 과잉대처로 맞섰고 보수 일부에선 ‘피의자 죽음’으로 폄하하며 ‘서거’란 단어사용에 시비를 걸기도 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유가족들은 정부의 국민장 제의를 받아들였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을 가슴에 담은 유족들이 이번 장례식을 ‘국민화합의 계기’로 삼기 원한다며 동의한 것이다.
한국의 여론이 ‘편가르기는 고인의 뜻이 아니다’라며 극단적 양 진영에 대해 질책을 보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같은 성숙한 시민의식이 큰 줄기를 이룬다면 장례식 후 우려되는 후폭풍도 소모적 분열로 끝나지 않고 발전을 향해가는 건강한 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시대를 폭풍처럼 살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되었다. 그의 공과 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는 훗날 역사가 내릴 것이다. 지금은 재미한인들에게도 ‘서민적 대통령’으로 소탈하게 다가왔던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의 죽음이 남긴 과제를 숙고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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