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9월 10일 밤 케네디공항을 떠나서 다음 날 새벽 독일의 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피곤함을 달래며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점심을 먹으려는 순간 난데없이 무슨 전쟁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의아해졌다. 화면에 나오는 건물들이 무척 낯익어 보였다. 전쟁영화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아니다. 이것은 분명 맨해튼이 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혹시나 해서 채널을 돌려 BBC를 틀어 보았지만 역시 같은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쌍둥이 건물이 타면서 허물어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뉴욕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면서 전화를 걸었지만 국제전화 회선들이 온통 마비가 되어 미국으로는 연결조차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다 싶어 여정을 단축해서 곧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떠날 계획을 하고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에서의 소지품 검색은 전례에 없이 철통같았고 마치 감옥소 입소 때와도 같이 철저하고 삼엄했다. 1회용 면도기까지 압수했다.
밀라노에서 부랴부랴 하루 동안 일을 마치고 계속 뉴욕 집에 전화를 시도하다가 드디어 수요일에야 통화가 되었다. 가족들은 다 무사했다. 맨해튼 다운타운에서 일하는 아들은 인파에 휩싸여 걸어서 59가 퀸즈보로 다리를 건너 저녁 늦게야 집에 왔고 46가에서 일하는 사위는 직원들과 함께 회사에서 그 날 밤을 지내고 화요일에야 집에 왔고 집에서 키우는 ‘스쿠터’(귀염둥이 애완견 이름)는 그 날 따라 이상하게 울더라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밀라노에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는 목요일부터 하루에 한 두 편이 있었지만 토요일에서야 간신히 좌석을 받아 돌아올 수 있었다. 가족들과 반가운 재회(?)를 하고 난 뒤에 제일 먼저 기다려지는 것이 다음 날 교회에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설교내용이 뜻밖이었다. 어느 큰 교회 목회자의 말인즉 이렇게 맨해튼이 공격을 받고 몇 천 명이 죽은 것은 일요일에도 돈을 벌려고 문 열고 장사하는 사람들, 또 많은 사람들이 마약들을 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에 저주받은 것이라 하였다.
반면 어느 교회에서는 아예 9.11에 대해 말 한마디 없이 지낸 곳도 있었다. 정작 교회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외면해야 되는 것일까? 세상과는 담을 쌓고 믿음만을 외쳐야 하는 것일까? 교회는 공의를 부정해서도 안 되고 공의를 위해서는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자기네 교회만을 위한 봉쇄된 교회의 편향성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또 9.11을 맞으면서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에 느꼈던 아쉬움이 계속 스치고 지나간다.
호기선/ 베이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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