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최초의 주류언론 기자로 맹활약 했던 이경원 선생의 팔순잔치가 지난 17일 한인타운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그동안 그가 한인 커뮤니티에 쏟아 부은 열정과 사랑을 보여주듯 행사장은 각지에서 모인 100여명의 축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생일 축하파티는 그가 지난 1955년 언론계에 투신한 뒤, 기자로서 수많은 사람에게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난처한 질문을 던지는 ‘무례함’을 저지른 만큼 그를 ‘로스트(roast)’ 하는 식으로 꾸며졌다. ‘로스트’는 명사를 초청해 애정 어린 흉을 보며 애정과 존경을 표시하는 모임. 한국식으로 하면 서로 계급장을 떼고 하는 ‘야자타임’과 비슷하다.
여러 난처한 이야기나 숨기고 싶은 진실을 들춰 내 당사자를 진땀나게 한다는 점에서 굽는다는 의미의 ‘로스트’라는 명칭이 붙었을 것이다. 파티가 진행되며 추억의 스토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유학생 시절, 친구들과 백인소유 농장에 숨어 들어가 김치를 먹으며 피크닉을 즐기다 농장 주인이 총을 들고 나타나자 줄행랑을 치면서 우리는 중국사람이라고 외쳤다는 비사가 공개됐다. 장난기가 가득한 대학생 이경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인 고등학생들을 위한 강연회에 강사로 초청됐을 때는 솔직한 성격인 그가 육두문자를 지나치게 사용해 행사 후 학부형들의 항의가 빗발쳤다는 일화도 소개됐다. 그의 독설에 가까운 파격적인 화술은 심층취재 전문기자 출신인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일간지 ‘새크라멘토 유니언’에 근무할 당시 목소리가 너무 크고 책상이 너무 지저분해 다른 기자들의 취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편집장이 그를 위한 사무실을 별도로 마련해 주었다는 스토리는 모든 참석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었다.
그의 오랜 친구는 나는 이 기자와 전화를 하고 나면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피곤이 절로 밀려오지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목소리로 표출되니 목소리 볼륨이 큰 것은 당연하다.
한인 대학생들이 참여한 토론회에 초대돼 강의를 마친 후 학생들과 밤새워 이야기를 하느라 주최측이 예약해 놓은 호텔 대신 학생 기숙사에서 잠이 들었다는 일화도 있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그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일화는 1992년 LA 폭동 때가 아닐까 싶다. 그는 폭동이 발생했을 때 한국일보 영문판 편집장이었지만 간 이식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선생은 침상에 누워 폭동 취재를 지시하고 신문을 만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기자의 냉철함과 사명감을 잃지 않은 그는 진정한 ‘신문쟁이’ 였다.
이 선생은 생일 축하연 내내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랑과 존경이 가득한 ‘비난’을 행복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아직도 타인의 삶을 뜨겁게 달굴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선생의 80회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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